[한경에세이] 그리운 선생님

입력 2015-05-13 21:02
수정 2015-05-14 05:33
힘들었던 고3 시절
든든한 버팀목 돼 준
담임선생님과 사모님
따뜻한 지도 잊지 못해

김선희 < 매일유업 사장 seonheekim@maeil.com >


내일이면 ‘스승의 날’이다. 이맘때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필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선생님들의 따스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필자가 고등학생이 된 1980년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한 시기였다. 당시 서울 강남은 막 개발이 시작됐다. 압구정동은 배밭에 둘러싸였고, 봉은사 앞길은 비포장이던 시절이다. 나와 친구들은 당시 만원버스를 타고 개발구역인 강남을 누비고 다닌 1세대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고등학교는 신설 사립학교였다. 선생님들은 대학 입학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학생들에게 강도 높은 자율학습을 요구했다. 특히 1980년 시행된 과외 금지 조치 때문에 선생님들은 더욱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각종 자율학습 지도로 모든 열정을 쏟았다.

하지만 사춘기였던 필자는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운동장의 야구장을 배회하고는 했다. 친구들은 내한공연하는 외국인 가수를 보기 위해 몰래 콘서트장에 다녀와서 단체기합을 받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신흥 명문을 만들고자 하는 선생님들의 의지와 이에 반항하던 우리들은 참 힘든 나날을 보낸 것 같다.

대입의 부담감이 엄습하던 고3 초기. 교장선생님은 강남의 유명 수학 과외강사를 교사로 전격 영입했다. 그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교사로 오셨다. 선생님은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대학에 들어가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하며 열심히 수학공부를 한 분이었다.

담임선생님의 사모님도 떠오른다. 사모님은 학생들을 먹이려고 종종 댁에서 손수 큰 양은 솥에 비지찌개 60인분을 끓여 오셔서 우리를 배불리 먹였다. 요즘 집에서 딸과 남편의 음식을 하기도 바쁜 주부 생활을 하다 보니 60명의 학생을 먹일 수 있는 비지찌개를 끓였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항상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던 선생님, 묵묵히 남편을 지원했던 사모님의 내조로 우리는 지금 한국의 50대가 돼 가정과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선진국화도 결국 이런 스승들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졌으리라.

김선희 < 매일유업 사장 seonheekim@mae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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