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동욱 증권부 기자 leftking@hankyung.com
[ 좌동욱 기자 ]
“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은 투자 대상이 없으면 지갑을 열지 않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한국 금융당국은 거꾸로 가네요.”
13일 서울 여의도 ‘ASK(한국대체투자서밋) 2015’ 행사장에서 만난 대형 연기금의 한 대체투자팀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날 한경에 실린 ‘금융감독원의 PEF 사상 첫 징계’ 기사를 언급하면서였다. 금감원의 징계 사유는 “PEF로 등록한 뒤에 6개월간 투자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국에서는 신중한 투자 관행으로 칭찬 받을 사안이 한국에선 징계 사유로 돌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금감원도 할 말은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297조의2)을 위반한 것을 확인하고도 징계를 안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업계 현실을 감안해 경징계를 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처벌 수위를 낮췄다고 생색낼 게 아니라 잘못된 제도부터 손질하는 것이 금융당국의 책무라는 지적이다. 해당 법조항은 일반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운용하는 공모펀드가 투자자 이익을 우선하도록 만든 규제를 따온 것이다. 국민연금처럼 전 ?岵?투자 능력을 갖춘 연기금, 보험회사의 자금을 운용하는 PEF에 적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운용 보수를 많이 타내기 위해 투자를 서두르는 PEF 운용사들을 경계해야 하는 게 바람직하다. 향후 부실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징계 대상이 된 PEF는 국민연금과 대기업이 해외 인수합병(M&A)을 위해 조성한 코퍼릿파트너십펀드다. PEF 운용사가 투자를 결정해도 기업이 반대하면 투자를 하지 못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코파펀드 운용사(총 5조원) 중 상당수가 아직 한 건도 투자를 하지 못했다. 오는 21일 징계가 확정되면 비슷한 상황에 처한 PEF 운용사들은 ‘투자 결행’을 위해 대기업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야 할지 모른다. 투자는 일정 부분 리스크를 안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법령에 떠밀려 숙제하듯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단칼에 베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원칙이 이번 PEF 징계에 부합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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