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이익단체처럼 행동하는 대법원

입력 2015-05-12 21:26
법조 산책


[ 양병훈 기자 ] “대법원이 저에게 간첩질을 시킵디다. 저는 못하겠다고 했지요.”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중견 변호사는 판사 시절 헌법재판소에 파견나갔다가 겪었던 일을 이렇게 털어놨다. 대법원과 헌재의 관계가 악화되자 대법원의 한 보직자가 “앞으로 헌재에 불리한 정보를 모아 보고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 변호사는 요구를 거절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사회의 윤리 기준을 세우는 대법원도 자기 이익이 걸린 일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며 “사법기관의 이런 행태가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대법원이 이익단체나 로비스트 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례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의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연기하며 “국회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절차가 지연돼 대법관 공백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결원이 있는 상태에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여는 것은 부적절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대법원이 사건 심리와 관련된 일을 공개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아주 이례적인 경우”라며 “사건을 지렛대로 임명동의안 통과를 촉구하겠다는 건데 차라리 솔직하게 이해를 구하고 통과를 요구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대법원이 난데없이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 퇴임 후 최신 현황’ 자료를 출입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차한성 전 대법관이 퇴임 후 변호사로 개업하는 게 적절한지 논란이 일 때였다. 자료 취지는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많이 한다’는 것으로 ‘한국 대법관의 개업도 이상한 게 아니니 비난하지 말라’는 맥락으로 읽힌다.

지난해 11월에는 상고법원 관련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켜달라고 국회에 입법로비를 한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한 의원 보좌관은 “자료까지 만들어 와서 법안 내용을 설명한 뒤 도와달라고 했다”며 “기업 등에서 입법로비를 하는 것과 모양새가 비슷했다”고 전했다.

시민들이 원하는 대법원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다. 조직 고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대법원의 일이 돼서는 곤란하다. 조직의 이익만을 위해 그러는 게 아니더라도 뒷문이 아닌 큰길로 다녀야 한다. 꼼수 잘 부리는 사람을 신뢰하는 이는 없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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