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성공단 임금, 기업도 한목소리 내야

입력 2015-05-10 20:35
"임금인상·남남갈등 조장 노리는 북한
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정신 뒤엎어
입주기업도 합의정신 복원 동참을"

조영기 < 고려대 교수·한선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 bellkey1@hanmail.net >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의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 대한 협의가 북한의 비협조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지난달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이후 북한은 한국과의 만남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최저임금 74달러(각종 명목의 지급총액은 180달러)에 근거한 임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담보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연체료를 부과하겠다고 입주기업을 협박하고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전제로 한 담보서 요구는 입주기업을 분열시키기 위한 북한의 압박전술이라며 ‘담보서에 서명하지 말라’고 지침을 전달했다. 이런 정부지침에도 불구하고 123개 개성공단 입주기업 중 49개 기업(10일 현재)이 3월분 북측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물론 입주기업들이 처한 상황은 모두 다를 것이다. 북한 요구를 거부했을 때의 악영향?우선 고려해 대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입주기업들이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면 북한은 이들 입주기업이 안고 있는 이 ‘불리한 현실’을 매번 악용할 것이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의 최저임금 인상건은 단순히 최저임금을 몇% 인상할 것이냐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즉 북한의 협박에 굴복해 정부지침을 외면한 입주기업의 행동은 북한당국에 ‘무조건 협박하면 통한다’는 잘못된 ‘학습효과’를 주는 자충수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주체다. 그러나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고, 정부와 기업 간 갈등을 유도하려는 북한의 흑심도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기업이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국 제 발등 찍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입주기업은 목전의 이익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목표로 장기적 관점에서 정부와 한목소리를 내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의 최저임금 인상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해 11월 북한이 개성공업지구 13개 조항의 노동규정을 일방적으로 개정하면서부터다. 북한은 이 규정에 근거해 올 2월 ‘최저임금 상한선 5% 룰’을 폐지하고 3월부터 북측 근로자의 월 최저임금을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인상한다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런 북한의 행태는 2013년 8월 남북한이 합의한 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의 정신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다. 발전적 정상화의 핵심은 협의와 합의를 통해 개성공단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사태에서는 남북 간 협의 없는 일방통행식 통보를 고착화하겠다는 북한의 흑심을 읽을 수 있다.

남북 간에 성사된 합의는 제대로 이행할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배경에는 개성공단이 북한 내에 있어 ‘배타적 행정권’을 일방적으로 휘둘러도 된다는 ‘갑(甲)질 본색’이 있다. 따라서 이번 임금인상 사태는 단순한 임금인상률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배타적 행정권이 작동되는 것을 막고 남북 간 합의정신을 복원해 공단이 발전적 정상화의 길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입주기업들은 눈앞의 작은 이익을 좇다가 더 많은 이익을 놓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보다 공단의 정상적 운영에 동참하는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 또 정부는 기업을 진심으로 설득해 공단발전의 초석을 다져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공단을 ‘합의의 준칙’에 의해 운영하는 발전의 장으로 키울 수 있다.

조영기 < 고려대 교수·한선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 bellkey1@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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