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땜질 수정' 공무원연금…'역주행' 국민연금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노동당이 완벽한 사회보장제도 실시를 주장하며 내세운 슬로건이다. 출생에서 사망까지 모든 국민의 최저생활을 국가가 보장함으로써 삶의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정치적 구호였다. 누구나 귀에 익은 달콤한 슬로건은 대다수 국가 사회보장제도의 궁극적 목표이자 이상이었다.
하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걸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못함을 영국 스스로 입증했다. 복지에 쏟아붓는 돈이 늘어나면서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영국 전체에 만연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던’ 영국은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회보장제도는 재정적자만 늘린 게 아니었다. 노동자의 근로의욕, 기업들의 투자의욕, 기업가 정신을 모두 꺾었다. 한마디로 재정부담을 넘어서는 과도한 복지제도가 고질적인 ‘영국병’을 낳은 것이다.
영국병을 치유한 지도자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다. 1979년 집권 ?대처는 재정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경쟁촉진이라는 대대적 개혁으로 만성적인 영국병을 치유했다. 개혁의 고비마다 이익집단의 반발이 컸지만 그는 구국의 리더십으로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영국은 인기에 연연해 하지 않는 정치 지도자의 ‘소신·애국의 리더십’으로 국가 기반이 다시 단단해졌다. 하지만 유럽의 일부 국가는 아직도 ‘달콤한 슬로건’에 취해 국가 펀더멘털이 허약해진 상태다. 남미의 상당수 국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우리 사회 화두(話頭) 중 하나는 공무원연금 개혁이다. 정부의 재정부담 지출이 너무 크고, 국민연금 등에 비해 받는 액수가 상대적으로 많으니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공무원연금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가의 곳간이 덜 비고, 다른 연금과의 형평성도 맞는다는 논리다. 정치권은 1년여간의 토론과 논쟁 끝에 공무원연금 개혁에 합의했다. 공무원들이 내는 돈을 5년간 30% 늘리고, 받는 돈은 20년간 10% 줄인다는 게 개혁안의 골자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혁으로 70년간 333조원의 재원이 절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연금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땜질 처방’ 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합의하면서 정치권과 공무원 단체가 2100만명이 가입한 국민연금을 손대기로 하면서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공무원연금 수령액을 줄이면서 대신 국민연금을 더 주기로 한 것이 결국 ‘눈 가리고 아웅’의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을 더 준다는 것은 ‘달콤한 카드’지만 국가의 곳간은 생각하지 않고 유권자 표만을 의식한 정략적 판단이라는 얘기다. 현행대로라도 국민연금은 고갈이 예정된 상태다.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으로 미래 세대의 부담만 더 커지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4, 5면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의 내용과 사회보장제도의 다양한 형태·기능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