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경기부양 위한 돈 풀기는 불가피하다지만…재정 포퓰리즘 '적자 편향' 차단해야

입력 2015-05-08 18:21
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7) 재정적자, 국가부채 그리고 적자편향

정부가 재정지출 늘리는 만큼
단기성과에 급급한 방만지출도 늘어
뷰캐넌 '적자에 빠진 민주주의'라 지적
관료·정치인 '적자 편향' 억제하려면
재정준칙 도입 '새는 구멍' 막아야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올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 국민연금 등 4대 사회보장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는 25조5000억원 적자가 예상되고, 올해는 33조6000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커질 전망이다. 덩달아 국가부채도 국내총생산(GDP)의 35.7%인 570조1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경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재정지출의 지속적 확대와 적자예산 편성에 따른 국가채무의 지속적 증대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30%대 중반이라는 점은 미국(102.2%), 일본(205.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 102.9%), 유로존(평균 88.1%)에 비해 양호해 보인다. 그러나 국가부채의 증가 속도는 한국이 OECD 34개국 중 일곱 번째이고,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보다도 더 빠른 편이다. 급증하고 있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경제에 치명적인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가 침체하면 이를 부양하고 안정화시키기 위해 ‘적자재정’을 통한 정부 개입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일찍이 케인스는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깊은 경기침체를 피하기 어렵고, 금융정책은 경제를 정상 궤도로 회복시키는 데 제한적인 역할만 한다”고 말했다. 이에 케인스를 추종하는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기에는 정부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인하하는 등의 방법으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그리스 정부가 ‘파산’하는 것을 보면서도 미국과 영국, 국제통화기금(IMF)까지 “각국 정부는 경기를 회복시켜야 하는 ‘정당한 임무’를 적극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든가 ‘재정 긴축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최근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펴는 긴축정책이 좋은 예다. 캐머런 총리는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유럽지역 다른 국가들과 달리 강력한 긴축재정 정책을 펴 2013년 1.7%였던 GDP 증가율을 올 들어 3%대로 끌어올렸고, 재정적자의 4분의 1을 줄이는 데도 성공했다. 정부 차입에 의한 재정지출 확대만이 경기회복의 유일한 길?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예기치 못한 충격에 요동치는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투자지출 재원 마련 시 세대 간 편익과 비용을 공평하게 부담시키기 위해 △장기적으로 세율을 평준화시키기 위해 △정치적 지지를 위한 포퓰리즘 정책 비용 마련을 위해 ‘차입(借入)’하게 되며, 이런 결과 재정적자는 커진다. 현재와 같은 글로벌 경제침체기에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지만, 경기부양이란 명목 아래 각종 재정지출을 방만하게 운용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적자(赤字) 편향’만큼은 단단히 제어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인들의 적자 편향이 과다한 차입 및 재정지출의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단기적인 재정지출 확대나 세금 삭감 정책 시행에 대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 하거나 선거 승리를 목적으로 한 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는 정치적 사익추구(私益追求)에서 비롯된다. 정치인들은 국가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장기적인 국민후생보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더 중요시한다. 과도한 단기 차입에 따른 미래의 비용 부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당선과 의원직 유지라는 정치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일단 쓰고 보자는 성향이 큰 것이다.

이런 적자 편향은 우선 정부와 정치인들의 ‘근시안’(단기성과 우선주의)과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 탓에 증폭된다. ‘세금은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공유자원 문제)라는 생각과 ‘말(약속)과 행동이 다른’(시간적 비일관성 문제) 정치인들의 보편적 특성도 한몫한다. 정치·재정적 사안에 대한 유권자들의 무지와 정보 부족은 물론 자신들의 배만 불리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숱한 이익집단들의 경쟁적 예산편성 요구 과정에서도 정치인들의 적자 편향은 단단히 다져진다. 이런 적자 편향이 ‘재정 포퓰리즘’의 근원이다. 이는 곧바로 ‘부채 편향’으로 이어진다.

정부·정치인들의 이런 적자 편향은 경기가 회복된 뒤에도 달라지지 않고 이어진다. 경기가 좋아지면 늘어난 세수 등으로 그동안 쌓인 적자를 메우는 게 당연한데도 다들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공공선택학파의 창시자 제임스 뷰캐넌은 ‘적자에 빠진 민주주의’란 표현으로 이런 현상의 정곡을 찌른 바 있다. 따라서 적자 편향과 부채 편향은 정부와 정치인의 ‘진실성이 결여된 언어’가 아니라 헌법이나 법률에 의한 준칙을 통해 억제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인의 이런 적자 편향은 어떻게 억제할 수 있는가. 만약 적자 편향이 정부의 단기 성과 우선주의와 지나친 낙관주의에 의한 것이라면 제도 개혁을 통해 사전적 또는 사후적으로 억제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부가 낙관적으로 재정전망을 한 뒤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사후적으로 이에 대한 정치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즉, 정치적 책임을 묻는 방법이 있다. 둘째, 재정전망 시 ‘정치적 희망사항’을 사전에 차단해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재정을 독립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두 가지 방법은 예산수지, 재정적자, 재정수지, 국가부채 등과 같은 총량적인 재정변수들에 대한 수치목표를 정해 장기적으로 제약을 가하고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재정준칙’의 도입이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재정정책위원회’ 설립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이성규 < 안동대 무역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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