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때 잘 헤어져야 불행한 파국 막는다

입력 2015-05-08 07:00
경영학 카페

자살한 기업 회장 메모에 총리 낙마·靑 측근들 오명
따뜻한 이별못하는 사용자, 상처받은 근로자에 해 입어


검찰 수사를 앞둔 대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을 앞두고 그가 가진 인터뷰와 메모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임명된 지 60여일밖에 안된 국무총리가 여론에 밀려 사퇴했다. 한 지방행정 수장은 검찰 조사를 받게 됐고, 대통령의 최측근 여러 명 역시 그가 남긴 폭로의 회오리 속에 빠져들고 있는 양상이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더군다나 사회 지도층에서 벌어졌던 사단인 만큼 적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경영적인 측면만 봐도 그렇다. 비전과 차이가 있는 경영활동, 기업의 핵심가치와 일치하지 않은 CEO의 모습, 기업과 기업활동을 사유화의 대상으로 인식, CEO 개인의 감정 분출과 기업 및 구성원에 대한 책임감 사이의 불균형, 기업의 사회활동에 대한 배경과 이에 대한 해석 등.

그런데 여기서는 한 가지 관점으로의 교훈만 생각해보자. 바로 관계라는 관점, 그것도 이해로 얽힌 관계의 종료 관점에서 교훈 말이다. 이 교훈에 대해서는 차두리 선수 은퇴와 관련한 지난 칼럼에서 주된 메시지를 언급한 바 있다. ‘사람은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잘 헤어져야 한다’고. 관계에서 금언과 같은 이 진실은 이번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헤어질 때 잘 헤어지지 못하면 예상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한다는 극명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는 서로를 필요한 존재로 인식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인생의 성공 요소를 상대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필요로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 속에서 삶의 수직적 상승을 맛보았을 것이다. 관계는 순조로웠을 것이다. 삶의 수준과 질을 결정짓는 필요로 엮인 관계였던 만큼 그 관계에 고귀한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필요로 관계가 유지된 동안에는.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관계를 마감할 때가 도래했을 것이다. 만날 때 상대에 가졌던 소중함만큼이나 헤어질 때도 소중함을 갖고 헤어져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좀 더 우위에 서 있다고 자임한 측에서 상대를 자신과 같은 수준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는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상처 난 자존심을 부여안고 그동안 관계로 호소했을 것이다. 우위에 위치한 측이 선처해 달라고. 하지만 우위에 있던 측은 이를 묵살했을 것이다. 자기보다 아래의 상대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을 것이므로. 그 상대가 할 수 있는 방도는 별로 없고, 자신이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한때는 좋았을 관계를 제대로 마감하지 못하면서 한 사람은 삶의 종말을, 다른 사람들은 그동안 쌓아 올린 인생의 위업을 한순간에 허물게 돼버리고 말았다.

기업 경영에서 만난 관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용자와 근로자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관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 관계를 마감할 때가 된다. 이때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용자가 손을 뻗어 따뜻한 안녕을 전해야 한다. 그럴 가치가 없다거나 이제는 필요 없다고, 괘씸하다고 내팽개치면 안 된다.

상처받은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해를 입힌다.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그가 대중을 향해서, 그리고 특히 남아있는 직원에게 던지는 사용자에 대한 혹평은 결국 사용자에 대한 이미지 실추와 더불어 종국에는 금전적 손실을 가져온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제발 헤어질 때 잘 헤어져라.’

박기찬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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