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정원사 헤세

입력 2015-05-05 20:4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독일 남부의 작은 온천마을 칼프. 헤르만 헤세의 고향이다.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 나오는 강은 의외로 볼품없는 개천이다. 그러나 도시를 둘러싼 숲은 울창하다. 이곳의 정원과 나무를 그는 평생 그리워했다.

그가 만년을 보낸 스위스의 몬타뇰라에도 나무와 숲이 많다. 그는 아름다운 루가노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았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정원을 손질하는 흑백사진 속의 그가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올 것 같은 곳. 여기서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 등 대작이 탄생했다.

헤세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망명을 거치며 여러 번 이사하면서도 가는 곳마다 정원을 만들었다. 그에게 정원은 영혼의 안식처였다. 그의 그림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하나도 없는데, 식물에 물을 주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정원사 헤세’가 유일하다. 그가 이토록 정원을 좋아한 이유는 뭘까. 아마도 고통스러운 생의 수레바퀴 자국 때문이었으리라.

나무에 물 주는 노작가의 모습

그는 열네 살에 수도원 기숙신학교에 입학했다가 1년도 안 돼 뛰쳐나오고 말았다. 부적응과 신경쇠약증, 짝사랑으로 인한 자살 기도, 정신요양원 생활, 김나지움 입학과 중퇴…. 작가로 이름을 날린 후에도 시련은 계속됐다. 막내아들의 중병과 아내의 정신병 악화, 자신의 신병까지 겹쳤다. 1차 대전 때는 전쟁에 반대해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았다. 2차 대전 때는 나치의 탄압에 시달렸다.

이런 고통이 그를 ‘정원사 헤세’로 만들었다. 한때 포도농사로 생계를 꾸릴 만큼 솜씨가 좋았던 그는 “이곳에 있으면 무엇이 화려하고 과장되고 오만한 것인지, 무엇이 즐거우면서 신선하며, 창조적인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나무에 귀를 기울이고 나무와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삶의 근본 법칙을 체득하게 된다. 나무 속에 숨겨져 있는 생각, 피부 밑에 흐르는 혈관, 우듬지에 매달린 잎사귀, 가지에 난 작은 상처, 실버들과 노란 꽃들이 금빛 눈을 활짝 여는 아침의 황홀!

우리나라에도 정원사 헤세처럼 나무와 숲 가꾸기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 많다. 늦둥이 자식을 위해 민둥산 가득 나무를 심으러 다니던 동네 아저씨부터 바람언덕에 흙지게를 지고 다니며 세계적인 식물원을 만든 원예학 박사, 미군 장교로 왔다가 눌러앉아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을 만든 푸른 눈의 정원사까지 있다. 그들이 일군 천리포수목원은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이 됐고, 한택식물원은 아시아 최대 규모로 커졌으며, 아침고요수목원은 한국 정원의 전범으로 꼽히고 있다.

송추에도 '헤세의 정원' 생겨

최근 송추계곡의 변신도 화제다. 호객꾼이 뒤섞여 왁자하던 계곡과 흙탕물이 튀던 샛길은 깔끔하게 정비됐고, 뽕나무, 자작나무가 줄지어 선 숲길도 본모습을 되찾았다. 40여년 전부터 이곳에 나무를 심고 숲을 가꿔온 옛 송추농원 주인 부부의 머리는 그새 하얘졌다. 농원 안에는 독특한 외관의 복합 문화공간이 들어섰다.

농원 이름이 바뀌었는데 재미있게도 ‘헤세의 정원’이다. 주인장의 아들이 헤세를 워낙 좋아해서 그랬다고 한다. 25년간 핀란드와 덴마크 회사에서 근무한 아들은 이곳에서 ‘송추의 헤세’를 꿈꾼다고 했다. 100여년 전에 태어난 지구 저편의 헤세가 지금 한국의 숲과 나무를 새롭게 가꾸고 있다니, 놀랍고도 반갑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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