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91세에도 현역 뛰는 미국 경영자

입력 2015-05-05 20:42
이심기 특파원=오마하(美 네브래스카주) sglee@hankyung.com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벅셔해서웨이의 50번째 주주총회가 열린 지난 2일 미국 오마하의 센트리링크스 컨벤션센터. 91세의 찰리 멍거 부회장이 주주총회장으로 들어서자 주주들이 일제히 일어서 환호를 보냈다.

커다란 박수와 휘파람 소리로 한동안 주주총회장이 떠나갈 듯했다. 멍거 부회장을 ‘친구를 잘 둔 2인자’ 정도로 생각했던 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진행된 주주와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의 인기 비결을 알게 됐다.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받지 못해 고민”이라는 한 주주의 고백에 그는 “나도 비즈니스 스쿨에서 한 번도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왜 그런 고민을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미국의 세금 제도에 대해 의견을 묻자 “부자를 쫓아내는 세제는 미친 짓”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지금까지 투자한 80개 회사만으로 이제 충분하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 얘기한다면 부자가 될 수 없다”며 불확실한 전망에서도 투자를 계속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제대로 금융을 배우고 싶다”고 요청하자 “저축부터 해라. 저축하는 법을 모른다면 도와줄 수 없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이날 주총장에 참석한 주주는 4만명을 넘었다. 미국 전역은 물론 중국, 독일, 싱가포르, 스웨덴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주주도 있었다. 이들은 84세의 버핏과 91세의 멍거 두 사람이 이룬 수익률보다는 두 사람이 56년간 현역으로 함께한 시간에서 삶의 교훈을 찾기 위해 차를 몰거나 자비를 들여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버핏은 “나는 아직 볼 수 있고, 친구(멍거)는 아직 들을 수 있다”는 농담을 섞어가며 5시간 내내 대화를 이끌어갔다. 1980년 초 주당 1200달러(지금은 21만달러)를 주고 주식을 샀다는 한 주주는 “멍거 없는 버핏은 존재할 수 없다”며 “두 사람의 건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이곳에 온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주총장을 떠나면서 한국의 기업들도 투자자들에게 50년간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이 들었다.

이심기 특파원=오마하(美 네브래스카주)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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