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출자는 자르고 일자리 늘리라는 모순

입력 2015-05-03 20:44
"회계상 본사 투자=자회사 출자
자회사 출자 규제국은 한국뿐

성장동력 살리고 고용 늘리려면
규제 효과·부작용 냉정히 따져야"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어떤 창도 막는 방패와 어떤 방패도 뚫는 창을 함께 놓고 호객하던 초(楚)나라 무기 상인의 거짓말이 들통 났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는’ 모순(矛盾)에 부딪친 것이다. ‘A는 여성이다’와 ‘A는 아버지다’는 모순관계다. 모순관계인 두 명제를 결합한 ‘여성 A는 아버지다’는 자기모순이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울린 “심장 근처 살 1파운드를 베어내되 피는 한 방울도 안 된다”는 판결은 자기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대기업 신규 출자는 가로막으면서 신규 채용을 늘리라는 압박도 모순이다.

외환위기 와중에 정권을 인수한 김대중 정부는 대기업을 경제 파탄 주범으로 지목했다. 구조조정을 빌미로 부채비율감축, 출자총액제한, 사업 빅딜 등 규제를 덧씌웠다. 단기간에 부채비율감축을 압박한 결과 계열기업 순환출자가 급증했다. 노무현 정부는 지주회사를 통한 순환출자 정리를 몰아붙였다. 경제민주화 구호를 내건 원죄 때문에 박근혜 ㅊ灌?역대 정부가 주저하던 신규 순환출자 금지 입법에 총대를 메고 말았다.

원금 10%에 상당하는 엄청난 과징금과 3년 이하 징역형을 정했으니 기존 순환출자 기업의 신규 출자는 불가능하게 됐다. 출자는 본사가 자회사에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고 투자는 본사가 직접 설비 확충에 나서는 것이다. 출자 대신 투자하면 된다는 주장은 허황되다. 부품공장을 내부적으로 운영할지 자회사로 운영할지는 제반 여건을 따져 결정해야 한다. 부품업계의 인건비 수준이 본사 평균보다 낮으면 자회사 운영으로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다. 고임금 기술자가 필요한 경우에도 별도 임금체계가 가능한 자회사가 유리하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 또는 손자회사 설립 제한 등 규제를 만들면 공장 해외 이전이나 부품 수입으로 국내 일자리는 쪼그라든다.

출자와 투자는 영문 표기(investment)가 동일하다. 자회사 자산과 본사 자산의 합산 표시는 연결재무제표가 주재무제표인 국제회계기준의 기본 원리다. 한국을 비롯한 130여개 국제회계기준 적용 국가와 독자적 회계기준의 미국은 자회사 출자와 본사 투자를 동일하게 처리한다. 자회사 출자를 가로막고 형벌로 금지시키는 것은 한국 혼자만의 창피한 규제다. 대기업 보유 자금을 따지고 자회사를 ‘문어발 경영’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망신이다.

글로벌 시가총액 선두를 다투는 애플과 구글의 환경은 다르다. 애플은 신규 투자를 위해 우리 돈으로 환산해 200조원 넘는 현금을 3월 말 현재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욕먹으며 보유한 현금은 56조원이다. 구글은 보험·제약·배터리·위성사진·태양광·로봇 등 다방면의 신사업에 진출하면서 국제적 이목을 모으며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사실 출자가 투자를 선도하는 경우가 많다. 하이닉스는 은행 관리를 받던 시절에는 연구개발 투자 부족으로 적자 탈출이 불가능했다.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전횡한다며 온갖 구박을 받았던 최태원 SK 회장이 일부 사외이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자를 결단했다. 실패로 끝났다면 온갖 비난을 뒤집어쓰고 경영권을 잃을 위험에 직면했을 것이다. SK그룹 출자로 신용등급이 상승했고 대규모 투자로 턴어라운드를 이뤄냈다. 만년 적자에서 벗어나 대규모 이익을 기록함으로써 거액의 법인세와 공장 소재지에 지방세를 납부해 국가 재정에 크게 기여했다. 출자를 금지하면서 투자와 일자리를 강요하는 것은 ‘피 한 방울 없이 살을 베어내라’는 것 같은 억지다. 대우조선 등 은행 관리기업도 대기업 출자를 통한 정상화를 앞당겨야 한다.

출자규제의 효과와 부작용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규제에 대한 반사이익이 해외 자본에 귀속됐는지도 밝혀야 한다. 미래 세대에 돌아갈 피해도 살펴야 한다. 난마처럼 얽힌 규제를 그냥 둘 수는 없다. 정치적 논쟁은 자제하고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낸 알렉산더 대왕 같은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출자규제 철폐로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해야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되살릴 수 있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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