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냐 협상 타결이냐
유로그룹회의서 결정…합의 쉽지 않을 듯
FT "디폴트 후 유로존 잔류, 가장 현실적"
[ 김은정 기자 ]
그리스 정부와 채권단 간 구제금융 협상이 구조개혁의 강도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72억유로(약 8조3400억원)의 구제금융 제공 여부를 결정할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회의가 24일(현지시간)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열린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에 대해 채권단과 그리스 정부 간 이견이 워낙 커 지원 결정이 나오기 힘들다는 관측이 많다. 그리스는 자금 지원을 못 받으면 다음달부터 잇따라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갚기 어렵다.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까지 테이블에 올려놓고 비상계획을 짜고 있다.
“6월 말까지 합의안 도출 어려울 듯”
유럽연합(EU)과 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그리스 채권단 ‘트로이카’가 그리스에 제공하기로 한 구제금융 규모는 총 2400억유로다. 이 중 2328억유로가 지원됐고 72억유로가 남았다. 채권단은 마지막 구제금융 분할금 지원 조건을 놓고 지난 1월부터 그리스 정부와 협상을 시작했다. 쟁점은 연금, 노동관계법, 부가가치세율, 민영화 등이다. 채권단은 그리스가 연금 삭감과 부가가치세율 인상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서 불만을 나타냈다.
채권단의 요구대로라면 1월 취임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사진)는 공무원 고용 확대와 민영화 중단 등 선거 때 내세운 주요 공약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그리스가 채권단과 계속 대립하고 있는 이유다.
그리스와 채권단이 이날 구제금융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만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23일 EU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 “양측 간 이견이 커 구제금융 결정은 오는 6월 말이나 돼야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투자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그리스가 맞닥뜨릴 상황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일단 24일은 어려워도 이달 안에 협상이 타결돼 구제금융이 이뤄지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그리스는 다음달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 그리스는 다음달 1일 2억300만유로, 12일 7억7000만유로, 6월 16억유로를 IMF에 갚아야 한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유력하게 부각되는 시나리오는 협상 장기화다. 이달 말까지 잠정 합의에 실패한 뒤 계속 협상이 진행되는 경우다. 채권단의 유동성 공급이 계속돼 디폴트는 피할 수 있다.
디폴트 현실화도 고려해야 할 시나리오다. 부채 만기가 잇따라 돌아오면서 유동성 부족으로 결국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디폴트에도 채권단과의 협상은 계속되기 때문에 그리스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를 결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 후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리스와 채권단 모두 그렉시트는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협상 장기화와 디폴트는 발생하지만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는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내다봤다.
디폴트 영향 크지 않을 전망
ECB는 그리스의 디폴트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수립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작년처럼 담보 조건을 완화해 채권단이 그리스에 추가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 채권단과 협의 아래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는 경우, 협의 없이 디폴트를 선언하는 경우 등이 고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것은 ECB뿐만 아니다. 직접적인 악영향을 받는 EU 국가도 각각 자금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 분석과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지면 일단 ECB의 긴급유동성 지원이 끊긴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 은행과 기업이 잇따라 부도를 낼 수 있다. 그리스 정부가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자본 통제를 결정할 수도 있다.
그리스 위기가 다른 국가로 옮겨질 가능성은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2012년 유로존 위기 때는 글로벌 보험회사와 은행이 그리스 채권을 상당 부분 갖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리스 채무의 80%가량을 트로이카가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유럽팀장은 “다른 신흥국과 달리 한국은 신용등급 상향 조정이 예고되는 등 기초체력이 좋은 데다 그리스에 대한 위험노출액이 적어 별 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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