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5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엊그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자리에서였다. 이날 시 주석은 이전 만남에서의 냉랭하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시 주석은 미소를 띠면서 아베 총리와 악수했고 기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도 보였다. 중·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시그널로 해석된다. 이제 양국관계는 ‘대화하는 갈등관계’로 전환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 주석은 이날 역사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그는 “(역사가)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초가 되는 중대한 원칙적 문제”라고 밝혔지만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이날 아침 일본 의원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지만 그에 대해서도 일언반구가 없었다. 그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이미 국제사회에 보편적으로 환영받고 있다”며 아베 총리에게 AIIB 가입을 은근히 권유할 뿐이었다. 정상회담이 결국 AIIB 참가에 소극적인 일본을 회유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쉽게 읽힌다. 물론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 중국 경제에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시 주석의 유연한 외교적 제스처에서 동북아 정치 지형의 큰 변화가 감지된다.
문제는 일본에 대한 ‘과거사 반성’이라는 명분론의 함정에 파묻혀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한국 외교다. 한국은 중국이 과거사 문제에 영원한 동반자 역할을 할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 나름대로 철저한 계산을 하면서 변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는 갈수록 소원해지고 오히려 미·일 밀월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 한국피로증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에는 한국을 배제하고 호주와 일본을 태평양 안보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사드 배치도 좌고우면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였다. 외교의 유연함도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뚜렷한 원칙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29일 미국 의회에서 열리는 아베 총리의 연설을 앞두고 미국 홍보회사를 동원해 찬물을 끼얹으려고 했다는 사실만 드러나 국가 망신만 더하는 상황이다.
외국 주요국가 정치인들이 일본 등 아시아 순방을 할 때도 굳이 한국은 방문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인도의 모디 총리, 독일의 메르켈 총리, 미국의 미셸 여사, 클린턴 전 미 대통령 등이 모두 일본만 방문하고 한국은 오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주요국 국빈이 끊어지다시피 한 것이다. 도대체 박근혜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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