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악화에 여 지도부도 등돌려…이 총리 결국 '사퇴'

입력 2015-04-21 03:04
취임 63일 만에…이완구 총리 전격 사의

여 "재·보선 참패 우려"…귀국 전 사퇴 압박
"해임 건의안 내겠다" 야 공세도 영향 끼친듯


[ 이정호 / 은정진 기자 ]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휘말려 사퇴 압박을 받아왔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20일 스스로 물러나는 쪽을 선택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 수수를 비롯한 연일 새로운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해 이 총리가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 총리가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페루 방문을 수행하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는 “이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며 “이 총리가 실제로 성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느냐에 관계없이 여론이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점이 사퇴 배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귀국 후 사의 수용 여부를 판단하겠지만 이렇게 된 상황에서 이 총리는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국정 수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던 이 총리가 결심을 바꾼 것은 여론 악화 이외에 새누리당 지도부마저 박 대통령 귀국 전 사퇴 불가피로 기류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여당 내에서도 사퇴 불가피론이 확산하는 형국에 박 대통령의 귀국까지 기다리다간 그야말로 ‘만시지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4·29 재·보궐선거가 전패 위기로 몰리면서 당초 박 대통령이 귀국한 뒤 총리 사퇴 문제를 결정하자던 지도부가 태도를 바꿔 ‘귀국 전 사의 표명, 귀국 후 사표 수리’ 방향으로 전환했다”고 했다.

소장파를 중심으로 당 내부에서 사퇴 불가피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지도부로선 부담이다. 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 순방 이후로 사퇴 문제를 미루면 당내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고 지도부가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런 뜻을 이 총리와 청와대에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 순방 중에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히면 국정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대통령 귀국 전에 자진 사퇴 뜻을 먼저 밝히는 게 국정을 안정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이날 저녁까지만 해도 이 총리는 21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등 예정된 일정을 변함없이 챙기기로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지도부의 이 같은 압박에 밤늦게 사퇴 쪽으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해임 건의안을 발의하겠다고 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인 것도 사퇴 결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총리실 관계자는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경기 성남 중원 보궐선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공정한 수사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임 건의안을 추진하고자 한다”며 “새누리당에 의사일정 협의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주말까지 총리와 새누리당에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새누리당이) 차일피일 미루면서 눈치만 보고 있다”며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당으로서 창피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은 21일 의원총회를 열어 해임 건의안 처리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이정호/은정진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