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보수적 법관과 진보적 법관

입력 2015-04-20 20:45
법에선 진영논리 성립 못해
무의미한 편가르기 지양해야

윤성근 < 서울남부지방법원장 skyline@scourt.go.kr >


법관 중에도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있는가. 신문에서 가끔 법관의 보수·진보 분류표를 보게 된다. 어느 편으로 알려진 법관이 의외의 재판을 했다고 놀라는 기사도 있다. 그러나 법관을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유해하기까지 하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매우 불명확하고 다의적으로 쓰인다. 특히 국내 정치적 맥락에서 사용되는 많은 경우엔 정파적 구분 기능 외에 어떤 개념적 통합성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규범의 영역엔 서로 대립하지만 각자 일리가 있어서 한쪽 견해가 확실히 옳다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가 무수히 많다. 존엄사나 안락사, 사형과 임신중절, 성전환, 동성혼 부부의 입양, 정당이나 종교단체 같은 조직의 자율권, 기타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공동체 이익과 개인 권리의 충돌 등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았거나 한계가 불분명한 문제는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다. 사회가 발전하며 이런 문제는 계속 새로 생겨나고 그 양상도 더욱 복잡해진다. 설령 사회적 합의가 있더라도 법으로 미리 정해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법은 일駙評♣?정하고, 법원은 이를 해석해 다양한 현실에 적용한다.

법관은 직업적 양심을 따른다. 법관에게 보수나 진보 같은 일반적 자기규정이 있을 수 없음은 물론이며 종교를 포함한 어떤 개인적 신념도 재판에 끼어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 합의 과정에서 법관들의 견해가 늘 일치하는 건 아니다. 치열한 논의를 거쳐도 도저히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경우 사실심 법원은 추가심리를 하며, 대법원에서 끝까지 합의되지 않은 견해는 소수 의견으로 기록된다.

만약 직업적 양심이 고정불변의 것이라면 평생 직업적 양심을 추구해온 법관들 사이에서 이렇게까지 견해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최선을 다해 개인적 신념을 배제하려고 노력해도 가치관의 차이가 미세하게 배어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오히려 깊은 성찰과 직업적 양심의 검증을 통과했지만 여전히 다양한 견해가 설득과 경청의 과정을 거쳐 재판에 반영됨으로써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은 견해들도 자기 몫의 기회를 얻게 된다. 보수와 진보라는 잣대는 현실의 무수한 다양성을 포섭하기에 너무나 미흡하다.

법원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면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인적 안배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법관을 임의로 편 가르고 각 정파가 자기 쪽 대변자를 법관으로 내세우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결국 법원까지도 정치 투쟁의 장으로 끌어들이게 되며 소수자 보호라는 법원의 중요한 역할을 위협하게 된다.

윤성근 < 서울남부지방법원장 skyline@scourt.go.kr >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