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서머스·버냉키·크루그먼의 치열한 '통화 논쟁'

입력 2015-04-19 21:15
서머스 "양적완화 철회해야"
버냉키 "제로 금리 유지해야"
크루그먼 "돈 더 풀어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경제이론을 조금만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두 학자 간 논쟁이 미국 학계와 월가에서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미국 경제 진단과 정책 처방을 놓고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간에 벌어지고 있는 ‘블로그 논쟁’이다.

논쟁의 발단은 미국 경제 진단부터 시작한다. 작년 3분기 5%까지 치솟았던 미국 경제 성장률은 4분기에는 2.2%로 둔화됐다. 이달 말 발표될 올 1분기 성장률은 0~1%로 더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8월 국가신용등급 강등 이후 벌어졌던 미국 경제 ‘소프트 패치(경기 회복 후 일시적인 침체)’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머스는 작년 4분기 이후 경기둔화 조짐을 장기침체에 들어가는 초기 단계로 평가한다. 장기침체론은 1938년 당시 하버드대 교수였던 앨빈 핸슨이 냅?주장한 ‘구조적 장기침체 가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가설은 한 나라의 경기를 총공급(AS) 곡선과 총수요(AD) 곡선으로 설명한다.

AD 곡선은 투자와 저축을 의미하는 ‘IS 곡선’, 유동성 선호와 화폐 공급을 의미하는 ‘LM 곡선’에 의해 도출된다. AS 곡선은 노동시장과 생산함수에 의해 결정된다. 상품, 화폐, 노동 등 모든 시장을 망라하는 ‘AD’가 ‘AS’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경기침체는 구조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이 서머스의 주장이다.

구조적 장기침체 가설에 버냉키는 ‘과잉저축 가설’로 대응한다. 논리는 간단하다. 저축이 소비보다 많으면 경기가 둔화된다는 ‘절약의 역설’이다. 미국처럼 총수요 항목별 소득 기여도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 경제에서는 절약의 역설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버냉키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 경제는 나라 안팎으로 ‘쌍둥이 과잉저축’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외적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주요 수출 대상 지역인 아시아 국가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외화를 과다하게 쌓고 있는 것이 미국 경제를 어렵게 해왔다는 것이다.

미국 내부적으로는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민은 소비하지 않고 저축만 늘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업가 정신마저 쇠퇴해져 기업인이 투자에 선뜻 나서지 않는 것도 미국 경제가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회복세를 보인다 하더라도 그 속도가 종전에 비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책 처방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더 뜨겁다. 서머스는 일시적인 ‘마약’에 불과한 ‘양적 완화’와 ‘제로 금리’는 하루빨리 철회해야 할 ‘악습’이라고 평가절하한다. 그 대신 단기적으로 재정지출 증대를 통해 총수요를 창출하고, 중장기적으로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미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버냉키는 나라 안팎의 쌍둥이 과잉저축은 금융위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심리가 원인이기 때문에 제로 금리를 유지하면서 소비심리를 안정시키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이렇게 하면 달러 가치가 떨어져 수출이 증대되고 미국 내에서 소비가 미약하더라도 이를 수출로 보완해 미국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 버냉키식 처방의 핵심이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이 달러 강세를 우려해 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해된다.

다른 학자들은 쉽게 댓글을 달지 못한다. 두 학자의 명성이 위대한 만큼 댓글을 달다간 오히려 자신의 명예에 금이 가는 ‘마라도나 효과’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라도나 효과는 월드컵 영웅인 펠레와 함께 명성이 높은 마라도나가 다칠 것을 우려한 수비수가 미리 피해줌에 따라 골을 넣기는 더 쉬워졌다는 데서 비롯된 용어다.

유일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은 학자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다. 당면한 국가 채무를 줄이기 위해 재정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는 ‘로고프 독트린’에 대해 늘려야 한다는 것이 ‘크루그먼 독트린’이다.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버냉키보다 더 과감하다. 버냉키가 주장하는 인플레이션 타깃선 2%를 4%로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증시에서 ‘과연 유동성 장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다. 최근 유동성 장세는 버냉키와 옐런의 힘이 크다. 앞으로 통화정책이 서머스의 주장대로 긴축으로 돌아서면 유동성 장세가 마무리된다. 하지만 크루그먼의 시각대로 보다 과감하고 대담한 통화완화 정책을 추진할 경우 지금보다 더 큰 유동성 장세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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