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의 고향인 영국 항구도시 리버풀. 18세기 산업혁명 중심지였다가 2000년대 초 무역 쇠퇴로 주저앉은 이 도시가 2008년부터 면모를 일신했다. 인구 44만여명의 작은 도시가 연간 방문객 1500여만명의 국제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최초 방문자만 350여만명이나 됐다.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된 덕분이다. 1년간 7000여개의 행사가 열렸고 경제효과는 8억파운드(약 1조3600억원)에 달했다.
유럽에서는 이런 문화수도 운동이 30년 전에 일어났다. 1985년 그리스 아테네를 시작으로 매년 도시 한 곳을 선정해 문화 활동을 집중적으로 펼쳤다. 문화로 유럽 통합에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회원국이 늘어난 2001년부터는 매년 두 곳을 정하고 있다. 올해는 벨기에의 몽스와 체코의 플젠이 문화수도다.
2009년 유럽 문화수도였던 오스트리아의 린츠는 나치의 거점이었다는 오명을 거꾸로 활용한 케이스다. 히틀러가 제국의 문화거점으로 삼았던 과거사를 ‘린츠 2009’ 프로젝트로 바꾸면서 도시 이미지를 개선한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도 비슷하다. 이에 힘입어 1996년 아랍 문화수도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2000년 중남미 문화수도가 멕시코 메리다에서 출발했다.
대부분 국가가 아니라 대륙별 선정 방식인데, 한 나라에서 매년 문화수도를 운영해보자는 움직임이 지난해 한국에서 일어났다. 원로·중진 문화예술인과 글로벌 스타들이 함께하는 코리아 문화수도 운동이다. 그 핵심은 ‘콘텐츠의 이동’이다. 다양한 예술 문화 레저 스포츠 행사를 ‘올해의 문화서울’로 옮겨다니며 개최하자는 것이다. 일회성 반짝 행사 대신에 연중 활동하면서 지역 문예회관·예술의전당 등을 활용한다는 게 장점이다.
물론 어느 날 문화수도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도시가 바뀌는 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교류에 동참하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삶의 질과 도시의 격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늘어나는 문화수도의 숫자만큼 우리 사회가 고루 풍요로워질 것이다. 지금까지 내년 후보지로 압축된 곳은 수원·제주·시흥 3개 도시라고 한다.
오는 30일 코리아 문화수도 선포식과 함께 첫 문화수도가 발표된다. 이후 2017년, 2018년 문화수도도 순차적으로 선정할 예정이다. 유럽·아랍·중남미와 달리 한 국가 안에서 문화수도를 옮겨 행사를 벌이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아직 낯선 개념이다. 서서히 열기를 모아나가자.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