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 치이는 대법관들
형사사건 25%가 '약한 벌금'…대법관 1인 年 3100건 처리
계류 2년 넘은 사건 615건, 업무 과부하…중요소송 차질
상고법원 설치 논란은 계속
[ 양병훈 기자 ]
A씨는 2013년 경기 평택시의 한 도로에서 좌회전 신호가 켜졌는데도 무시하고 직진하다 신호위반으로 적발됐다. 교통범칙금 6만원을 부과받은 A씨는 즉결심판에 넘겨지자 정식 재판을 신청해 선고유예 처분을 받은 뒤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지만 최종 결과는 1심과 같았다. 대구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B씨는 2009년 9월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지 않으려고 면회 온 후배에게 자신을 사기죄로 고소해달라고 부탁했다. B씨의 후배는 B씨가 시계를 사주겠다며 35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는 허위고소장을 경찰에 냈고 B씨는 이감을 피할 수 있었다.
무의미한 상고로 대법원이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다. 대법원은 상고사건 수가 2005년 2만2587건에서 지난해 3만7652건으로 최근 10년간 1만건 넘게 늘었다고 13일 발표했다. 상고사건 수가 1991년 약 1만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지난 20여년간 3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업무는 갈수록 가중됐다. 지난해 상고사건 수를 대법관 수로 나누면 한 명이 연간 3100여건, 매일 8.5건의 사건을 처리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 가운데 판결 결과가 바뀌는 파기환송률은 5% 안팎에 불과하다.
한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아보고 싶어하는 국민 심리 등이 반영돼 상고사건 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에 올라오는 형사사건 가운데 25%가 약한 벌금형으로 끝날 가벼운 사건”이라며 “정작 법률적·사회적으로 중요해 대법원의 충실한 심리가 필요한 사건들은 선고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상고사건 급증으로 심리가 지연돼 2년이 넘도록 선고가 내려지지 않은 사건은 현재 615건에 달한다. 가장 오래된 사건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소송으로 대법원에 2007년 접수돼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대법원은 상고사건 부담을 줄이고 전원합의체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해오고 있다. 상고법원은 사회적·법리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단순 상고사건을 처리하는 법원을 말한다.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이 국회에 제출돼 있으며 법제사법위원회는 오는 20일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그러나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상고법원 설치를 반대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대법관의 사건부담을 줄이려면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 가장 직접적이고 간단명료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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