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뒤늦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들어가려다 미국에 거부당하더니 급기야 쌀시장 추가 개방이라는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TPP 가입과 관련한 본지 기자 질문에 “(쌀 시장 추가 개방을 검토하고 있는) 일본이 할 수 있다면, 한국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미국 정부 관계자 역시 “한국도 실질적인 방법으로 쌀 시장을 열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쌀시장 추가 개방을 TPP협상 종료 후 한국의 가입조건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물론 정부는 TPP와 쌀시장 개방은 연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관세율 513%로 쌀시장 개방을 발표하면서 TPP를 포함, 향후 모든 FTA 협상에서 쌀은 양허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이런 정부가 TPP에 가입하려면 쌀 문제가 불거질 것임을 몰랐을 리 없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이 TPP협상 과정에서 쌀 개방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일본에 기존 의무수입물량(MMA) 외 20만t의 쌀을 저율관세 혹은 무관세로 수입할 것을 요구해 왔고, 일본은 5만t 추가 개방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도 쌀 추가 개방 문제에서 예외가 될 리 만무하다. 이미 미국 외에 호주 베트남 등도 한국의 쌀 관세율 513%가 너무 높다고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정부가 TPP 참여를 차일피일 미뤘던 이유가 실은 쌀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동안 “TPP 협상국들과는 대부분 양자간 FTA를 맺었다” “TPP는 추이를 봐 가며 대응해도 늦지 않다”는 등 딴소리만 해왔다. 국민을 속였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중국과는 FTA 타결이다, AIIB 가입이다 외쳤던 한국 통상외교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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