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신경영 선언 직후 대학생 디자인 인재 지원
미국 명문 파슨스와 협력…2년 뒤엔 SADI 설립
"카피캣으론 세계 일류 못돼" 밀라노 선언으로 조직 혁신
사내 디자이너 1200명 근무…제조업체론 세계 최대 규모
[ 남윤선 기자 ]
2005년 4월7일. ‘세계 디자인의 성지’로 불리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삼성 사장단이 집결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이 회장은 “삼성의 디자인은 1.5류”라며 “짧은 순간에 고객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삼성의 디자인은 일본의 ‘카피캣’ 정도로 평가받던 시절이었다.
만 10년이 지난 2015년 4월. 삼성의 디자인은 환골탈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6는 월스트리트저널로부터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폰”이란 극찬을 받았다. 삼성은 올해 세계적 권위의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가장 많은 금상을 받았다.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 강화 역사는 크게 3단계로 나눠진다. 시작은 1993년 디자인에 흥미가 있는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디자인 멤버십 프로그램’과 1994년 개교한 한국 최초의 디자인 전문대학 삼성디자인학교(SADI)였다. 이를 통해 인재를 육성한 삼성은 이 회장의 ‘밀라노 디자인 선언’으로 조직에 ‘디자인 최우선주의’를 심었다. 그 결과가 갤럭시S6, SUHD(초고화질) TV와 같은 제품으로 꽃 피고 있다는 분석이다.
○“디자인 토양을 만들자”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며 ‘신경영 선언’을 한 직후 또 다른 주문을 냈다. 이 회장은 비서실에 “디자인을 좋아하는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줘서 육성하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비서실 직원들은 당황했다. 왜 삼성 직원이 아닌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줘야 하는지 당시엔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디자인은 특정 인물을 골라 집중 육성한다고 키울 수 있는 역량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대신 한국 사회 전체에 디자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고 봤다. 이 회장은 “삼성에 안 오면 어떠냐. 한국 디자인이 좋아지면 됐지”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삼성 디자인 멤버십이다. 이 프로그램은 장학금을 지원하고, 삼성의 실제 디자인 과정에도 참여해 실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꼭 디자인 전공이 아니더라도 관심만 있다면 응모할 수 있다. 융합적 사고를 가진 디자인 인재를 키우자는 취지다.
이 회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년 뒤 미국 명문 디자인학교인 파슨스와 협업해 아예 디자인대학을 셀患? 바로 SADI다. SADI는 나이, 전공과 상관없이 ‘끼’만 보고 신입생을 뽑는다. 한 SADI 졸업생은 “법대를 나왔는데 디자인이 너무 하고 싶어 손을 물어뜯어 피로 포인트를 준 작품을 냈는데 합격 통보가 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육성된 인재들은 삼성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한국 디자인의 이름을 높이고 있다. 지난 1월 삼성이 디자인경영센터 글로벌센터장(전무)으로 영입한 영국 디자인회사 탠저린의 이돈태 공동대표가 대표적이다. 탠저린은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소속돼 있던 회사다. 이 전무는 이곳에서 공동대표까지 지내며 아시아나 A380 기내 디자인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낸 인물이다. 1993년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에 다니던 이 전무는 삼성 디자인 멤버십 1기로 뽑혀 디자인 실무를 배웠다. 이후 유학, 영국 생활 등을 거쳐 22년 만에 삼성으로 돌아온 것이다. 삼성 밖에서도 조항수 카카오톡 부사장, 디지털 광고판 제작사 바이널의 곽승훈 대표, 황성걸 홍익대 교수 등이 디자인 멤버십을 거쳤다.
○세계 최강의 디자인 조직이 되다
삼성디자인멤버십과 SADI가 디자인 문화를 만들었다면, 2005년 밀라노 디자인 선언은 삼성이라는 조직을 디자인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됐다. 삼성의 TV 디자인을 총괄하는 강윤제 전무는 “10년 정도 기반을 닦았으면 본격적으로 제품 디자인의 수준을 올려야 할 때가 됐다는 게 당시 삼성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회장이 디자인을 강조하자 조직 분위기도 바뀌었다. 이전에 디자인 부서는 생산이나 상품기획의 ‘명령’을 따르는 조직이었지만, 밀라노 선언 이후에는 디자인이 다른 부서를 이끌기 시작했다. 성과도 곧 나왔다. 바로 다음해 삼성은 와인잔을 형상화한 ‘보르도 TV’를 출시해 일본 소니를 무너뜨리고 TV 시장 세계 1위에 올랐다.
이후로도 삼성은 디자인 투자를 계속해 왔다. 현재 삼성전자는 사내 디자이너만 1200명에 이른다. 단일 제조업체로는 가장 많은 디자이너를 보유하고 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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