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중국의 야망…21세기 '금융실크로드' 꿈꾸다
1736년 중국(청나라)에서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던 후난과 후베이 제철소(용광로 가마)가 폐기됐다. 이 제철소는 20세기에 들어서야 겨우 생산을 재개했다. 제철산업은 한 국가의 기간산업인데도 중국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중국의 미래전략 부재(不在)와 몰락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에 썼다. 명나라(1368~644) 초기까지만 해도 유럽보다 앞선 문명을 자랑했던 중국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덩샤오핑(1904~1997)이 등장하기까지 200년 이상 지리멸렬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물길을 돌린 중국이 이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과거의 오류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근대 이전 최고의 나라
근대와 전 근대의 경계로 삼는 1500년 이전의 문명 가운데 중국처럼 찬란했던 문명은 없었다. 11세기에 인쇄술이 발명됐고, 운하와 관개시설이 잘 발달돼 있었다. 지폐가 상업과 시장을 확대했고 11세기 후반에는 제철산업까지 발달했다. 당시 철 생산량은 700년 뒤 나타날 산업 矗?초기 단계의 영국 철 생산량보다 많았다고 한다. 화약과 나침반은 해상무역과 정화(鄭和)의 해외원정까지 가능케 했다. 중국의 도시에는 유럽 상인으로 넘쳐났다. 인구는 유럽 전체(5000만~5500만명)보다 훨씬 많은 1억~1억3000만명에 달했다. 인구의 증가는 잘 먹고 잘살았다는 방증이다.
이랬던 중국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명나라는 중후반기에 들면서 이전의 영광을 바탕으로 더욱 밝은 미래를 만들지 못하고 추락했다. 유교 경전에 얽매인 막강한 관리들은 경제력과 군사력 증강에 관심이 없었다. 유교 관리들은 상업과 상인을 싫어했다. 재산을 몰수하기 일쑤였고, 사업을 방해했다. 해외무역도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통제했다. 경제성장의 불씨는 서서히 꺼져갔다.
개인·자유·법치 부족…부패
유럽이 한창 개인과 자유, 시장, 상업, 무역에 눈을 뜨고 산업혁명으로 접근할 때 선진문명 중국은 거꾸로 통제경제로 치달았다. 인쇄술은 민영화되지 않은 채 관료를 위한 저술출판에 독점 사용됐다. 실용적인 지식은 활자와 책을 통해 전파되지 못했다. 황제가 통제해야 하는 나라에 백성의 책읽기는 방해물이었다. 구텐베르크가 민영화된 인쇄술도 성경과 각종 책을 찍어 파는 ‘장사를 위한 인쇄’는 중국에서 어불성설이었다. 지폐 사용도 통제돼 시장을 통한 효율적 거래와 교환은 활기를 잃었다. 관리의 뒷배가 없으면 상인과 기업인은 산업을 일으킬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해외무역과 어업도 금지당했다. 명나라는 400년 전 송나라보다 모든 면에서 소극적이었다. 1644년 청나라가 들어섰으나 몰락을 멈추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에 반해 유럽은 왕권을 통제하고 개인과 자유를 강조하는 문명이 지배하고 있었다. 법치가 나타났고, 시장과 계약의 정신이 확장됐다. 군주에 의한 가혹한 세금 징수가 없어져 귀족과 개인들은 초기 단계의 혁신을 통해 생산력을 끌어올렸다. 애덤 스미스가 나타났던 시기였고 산업혁명이 잉태돼 꽃피는 계절로 접어들었다. 유럽과 중국의 운명은 완전히 갈렸다.
잘 보이는 손…중앙통제 경제
청나라의 몰락과 공산주의의 풍파를 겪었던 중국은 1970년대 극적으로 덩샤오핑을 지도자에 앉히는 결정적 계기를 맞이했다. 이후 중국은 급성장했다. 민주주의를 배운 적이 없었지만 중국은 서둘러 자본주의를 이식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일당 독재의 정치체제라는 기형적 구조를 낳았다.
중국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서구식 자본주의와 달리 공산당이 통제하는 ‘잘 보이는 손’의 자본주의다.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다. 중앙통제 경제는 효율을 강조한다. 스탈린의 소련도 초기에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더 많은 자본과 저축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런 통제경제 체제는 장기적으로 문제에 봉착한다. 중앙통제경제는 곧 관료의 경제를 말한다. 관료는 더욱 비대해지고, 부패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치 지도층의 재산이 대개 수조원에 달한다는 보도는 흔하다. 경제와 정치의 유착은 지대 추구형 경제로 타락한다.
중국이 세계적 리더가 될 수 있을지 여부는 경제력 못지않게 법치, 인권, 자유, 개인과 같은 인류보 資?가치를 존중하는지에 달려 있다. 덩치만 큰 깡패라면 리더가 아니라 두목일 뿐이다. 중국이 이런 가치를 존중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와 개인주의, 법치주의, 시장경제 DNA가 부족했던 중국. 근대 이전 중국의 찬란함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부패와 무능, 관료화가 중국을 다시 주저앉힐지도 모른다. ‘지배권력과 경제번영’을 쓴 멘슈어 올슨은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고, 정부에 의한 강탈이 없이 계약이 제대로 지켜지는 나라가 번영한다”고 했다. 그런 중국이어야 우리도 좋은 이웃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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