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허브 꿈꾸던 싱가포르 '사면초가'

입력 2015-04-02 21:24
수정 2015-04-03 03:45
중국 후강퉁 시행에 입지 좁아지고…잇단 주식거래 중단 사태

작년 주식거래 26% 감소…상장기업수 태국 밑돌아


[ 김은정 기자 ] 아시아 ‘금융 맹주’를 노리는 싱가포르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2000년대 들어 각종 금융 규제를 풀면서 해외 자본을 대거 유치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자산운용회사들이 잇따라 사무실을 열고 사업을 확대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작년 11월 후강퉁(홍콩과 상하이 증시의 교차매매 허용)이 시작되고, 잇따른 금융 거래 중단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해외 투자자들이 싱가포르 금융시장에 등을 돌리고 있다. 금융 규제를 완화해 해외 기업 상장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태국의 공세도 위협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 투자자에 빗장 연 태국

2일 세계거래소연맹에 따르면 작년 싱가포르 주식시장의 거래량은 2094억달러(약 230조원)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2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상하이와 홍콩 주식시장은 각각 18.9%, 14.9% 증가했다. 한국도 5.1% 증가했다.

주식시장의 유동성을 나타내는 싱가포르증권거래소의 월知?주식회전율(2014년 기준)은 36%로 전년 49%에서 13%포인트 떨어졌다. 상하이증권거래소는 204%로 전년 148%에서 56%포인트 올랐다.

신규 상장 기업 수는 태국에도 뒤처진다. 작년 한 해 동안 싱가포르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은 총 32개다. 태국의 36개보다 4개가 적다.

작년 상반기만 해도 싱가포르는 원자재와 외환거래 분야에서 전통적인 아시아 금융 강자 홍콩을 앞질렀다. 글로벌 4위 원유 거래 중개업체 스위스 군보르는 작년 초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직원을 20% 늘리겠다는 발표까지 할 정도였다. 외환거래 실적은 도쿄를 제치고 아시아 1위로 올라섰다. 작년 10월 홍콩이 민주화 시위 등 정치 소요 사태에 시달리면서 화교 자본이 대거 싱가포르로 옮겨가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이룬 싱가포르 금융시장은 홍콩과 경쟁하기 충분할 뿐 아니라 투명성, 개방성, 도덕성 면에서 홍콩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투자자 신뢰 상실까지 ‘악재 첩첩’

하지만 투자자들의 신뢰를 약화시킬 만한 악재가 이어졌다. 작년 11월에는 정전 사태로 주식거래가 갑자기 정지됐으며, 12월에는 시스템 결함으로 증권거래소 개장이 3시간 넘게 지연되기도 했다. 투자자들이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요구했다.

게다가 중소형주 가격이 갑자기 폭락하고 각종 기업 관련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싱가포르 금융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커졌다. 싱가포르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태국 등 주변 국가에 비해 해외 투자자를 끌어들일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태국이 2013년 해외 기업 상장 허용 계획을 발표한 이후 지속적으로 태국 금융시장에 해외 투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며 “후강퉁 시행 이후에는 해외 기업과 투자자들이 중국 금융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아시아 금융 허브로 제대로 자리 잡으려고 했던 싱가포르가 기업 유치, 투자자 신뢰 회복, 시스템 개선 등 총체적인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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