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씀이 줄인 가계…여유자금 91조 '사상 최대'

입력 2015-03-23 21:07
수정 2015-03-24 10:16
한은 '2014 자금순환표'

불안한 미래 대비 저축·보험 등에 쌓아둬…기업도 설비투자 줄여


[ 김우섭 기자 ] 지난해 가계가 씀씀이를 줄여 저축 보험 연금 등에 쌓아둔 돈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확실한 노후에 대비하고 가계부채 부담 등으로 소비가 급감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기업도 금융권에서 빌리는 자금의 규모를 축소해 설비투자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2014년 중 자금순환표(잠정치)’를 보면 작년 가계(소규모 자영업자 포함)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잉여 규모는 91조7000억원으로 전년(87조4000억원)보다 4조3000억원(4.7%) 늘어났다. 자금잉여 규모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다.


자금잉여(자금운용-자금조달)는 저축이나 보험, 연금, 채권, 현금 등에 쌓아둔 자금에서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빌린 돈을 뺀 것이다. 쉽게 말해 소비하는 데 쓰지 않고 갖고 있는 여유자금이다.

가계잉여가 느는 이유는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 지출을 줄이는 가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가계의 씀씀이를 보여주는 평균 소비성향은 지난해 72.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쓸 수 있는 돈이 100만원이라면 72만9000원만 쓴 것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금융자산이 묶이면서 가계에 머무는 돈이 많아진 것도 한 이유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정년 이후의 일자리 부족과 노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소비를 줄이는 가구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금리에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가계가 현금 등으로 보유하고 있는 자금은 13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3년 9조4000억원에 비해 4조2000억원이나 증가했다.

가계의 금융부채는 금융자산의 절반이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가계 금융자산은 2885조8000억원으로 금융부채(1295조원)보다 2.23배 많았다. 금융자산 대비 부채의 비중은 2013년 2.19배에서 소폭 개선됐다.

기업 투자도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기업(금융법인 제외)의 자금잉여는 지난해 -33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기업 자금잉여는 2008년 -99조9000억원을 기록한 이후 2012년(-54조2000억원) -50조원대에 진입하는 등 규모가 꾸준히 감소했지만 지난해에는 2013년(-31조5000억원)보다 1조7000억원 늘었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 자금잉여가 늘어난다는 것은 설비투자 등을 위한 자금 차입이 줄어들거나 설비투자 자체를 줄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자금조달 금액은 2013년 117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101조5000억원으로 15조7000억원 줄어들었다. 기업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빌린 돈도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문소상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자금순환표상의 기업의 설비투자 수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반정부(중앙+지방)의 자금잉여 규모(18조1000억원)는 세수 부족 등의 영향으로 전년(18조6000억원)보다 5000억원 감소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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