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I저축은행, 3조 부실채 매각 시도…절반은 시효 지나 '불법추심' 노출

입력 2015-03-23 20:44
수정 2015-03-24 04:07
채무자 울리는 불법 추심

3조3000억 부실채권, 200억원대에 '땡처리'
채무자 13만5000명 중 10만여명 불법 추심 노출
100원만 갚아도 시효 연장…금감원, 어정쩡한 태도 일관


[ 조진형 기자 ]
채무자 10만여명이 채권 소멸 시효가 지나 갚지 않아도 되는 빚을 독촉받을 상황에 놓였다. 금융당국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효 5년(상사 채권 기준)이 지난 조(兆) 단위의 부실채권(NPL)이 금융시장에서 버젓이 거래되고 있어서다. NPL을 인수한 채권 추심 업체는 채무자에게 시효가 지났다는 사실을 속인 채 빚을 받아내려 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어정쩡한 감독 행태가 불법 추심을 조장하는 NPL 매매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3조원대 채권, 200억원대에 매각

23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일본계 SBI저축은행은 미상환 원금 3조3000억원 규모의 무담보 NPL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매각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은 지난 17일 채권 추심 업체들을 대상으로 입찰을 실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다. 매각 규모는 미상환 원금의 0.5~1% 수준인 200억원대다.

이번 매각 대상에는 신용카드 무담보 채권 6600억원이 포함돼 채무자 숫자가 13만5000명에 이른다. 거래가 마무리되면 이들의 채권자가 금융회사에서 채권 추심 업체로 바뀐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채무자라는 데 있다. 이번 NPL 입찰자 등에 따르면 채무자 13만5000여명 중 10만명 이상은 시효가 소멸된 완성 채권을 지니고 있다. 채무 금액 기준으로는 3조3000억원의 절반 수준, 최소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금감원 지도 묵살

법적으로 이들 채무자는 시효가 지나 해당 채무를 갚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실제 NPL 시장에서는 시효가 끝난 채권을 추심하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시효가 만료된 빚도 받아낼 수 있는 노하우를 갖춘 채권 추심 업체와 휴지조각 같은 NPL을 매각해 한 푼이라도 더 건지려는 금융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번 거래만으로도 10만명의 채무자가 갚지 않아도 될 빚을 독촉받는다.

비단 SBI저축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부 카드사 등도 수만건이 넘는 대출채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시효가 끝난 채권을 10% 안팎 끼워팔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2012년 말 NPL 매각 대상에서 시효가 지난 채권을 제외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말뿐이었다. 한 달 전에는 같은 취지의 공문을 금융회사에 보냈지만 묵살됐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다른 금융회사도 관행적으로 시효가 지난 NPL을 매각하고 있다”며 “금감원이 협조를 요청했지만 법적 자문 결과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추심 사각지대 방치할 건가

시효가 소멸된 채권은 원칙적으로 추심할 수 없다. 채권추심법(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11조에서 ‘무효이거나 존재하지 아니한 채권을 추심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금감원 대부업검사실 담당자도 “채권추심법에서 소멸 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선 추심을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SBI저축은행뿐 아니라 채권 추심 업계는 시효 소멸 채권에 대해서도 추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금감원이 2009년 마련한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관련 위반 사례로 ‘채무자가 시효가 지났다는 점을 들어 추심 중지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 추심을 했을 경우’로 한정했다는 것. 상환 독촉을 받는 당사자가 항의하지 않으면 추심이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어정쩡한 가이드라인 문구로 혼선을 빚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적 해석의 소지를 피할 수 있는 추심 수법도 수두룩하다. 채무자가 법적 지식에 밝지 않다는 점을 악용하는 방법들이다. 대표적으로 채무자의 ‘시효 이익’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시효가 지났더라도 채무자가 돈을 100원이라도 갚으면 시효는 새롭게 생겨난다.

각종 소송을 남발해 시효를 늘리는 방법도 있다. 통상 추심 업체는 시효가 끝나기 직전에 대여금 반환 소송 등을 제기해 시효를 10년 늘리지만 시효가 끝난 이후에도 이 같은 시효 연장이 가능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채무자가 소송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며 “선량한 채무자에 대한 추심 사각지대가 발생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부실채권(NPL)

non performing loan. 금융회사가 기업과 개인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채권을 말한다. 국내 국책·시중은행의 NPL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23조8000억원 수준이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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