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복잡한 경제범죄 신속하게 해결…'변호사 출신 경찰관' 떴다

입력 2015-03-21 09:09
기업간 특허분쟁·투자사기 사건 등 주로 맡아
지난해 20명 첫 특채…수사권 독립에도 일조


[ 김태호 기자 ]
기업 간 특허권 분쟁, 투자 사기, 기업인의 횡령…. 이지홍 서울 수서경찰서 경제범죄수사팀 경감이 수사 중인 사건 목록이다. 이 경감은 로스쿨을 졸업한 뒤 2년여간 변호사로 일하다 경찰이 됐다. 지난해 경찰의 첫 변호사 경감 특별채용에 지원해 합격한 것. 이 경감이 담당하는 사건만 30건에 달한다.

송지헌 서울 서초경찰서 경제범죄수사팀 경감도 변호사 출신 경찰관이다. 사법고시 출신인 그는 기업 관련 사건 수사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싶어 경찰에 지원했다. 기업 회계장부 조작에서 변호사법 위반 등과 관련된 사건을 주로 맡고 있다.

아직 새내기 경찰관이지만 이들에 대한 동료들의 신뢰는 남다르다. 변호사 출신답게 복잡한 경제사건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박호상 수서경찰서 경제범죄수사1팀장은 “민원인이나 참고인도 변호사 출신 경찰관의 설명을 들으면 복잡한 사건을 쉽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국민 수사 서비스 향상을 위해 특채된 20명의 변호사 출신 경찰관이 일선 경찰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들이 주로 일선서 경제팀에 배치되면서 수사에 대한 민원인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동료 경찰관들도 법률적 조언과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강신명 경찰청장이 올해 경제팀의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변호사 출신 경찰관의 역할은 더 커질 전망이다.

변호사 출신 경찰관들은 법조인의 길을 접고 경찰을 선택한 이유로 ‘수사’를 꼽는다. 이 경감은 “잘못된 일을 저지른 사람의 말을 믿으면서 변호하는 과정에서 회의감이 들었다”며 “직접 현장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경찰 수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투자 사기범을 잠복근무 끝에 검거했는데 “그때 ‘내가 정말 경찰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보람도 느꼈다”고 말했다.

송 경감도 수사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미술을 전공한 화가 지망생이었다. 우연히 헌법 책을 접한 이후 사법고시를 준비해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서울북부지검에서 검사직무대리 실습을 하다가 경찰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 송 경감은 “검찰보다는 범행의 실마리를 찾아 해결해 나가는 경찰 업무가 더 잘 맞을 것 같았다”며 “사법연수원에서부터 경찰에 들어갈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들처럼 경찰이 되려는 법조인이 적지 않다. 지난해 20명 채용에 74명이 지원해 3.7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는데, 진행 중?올해 특채에도 20명 채용에 74명이 지원, 같은 경쟁률을 보였다.

경찰 내부에선 앞으로 경감 특채에 더 많은 변호사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변호사 2만명 시대에 접어들어 경쟁이 심해질수록 경찰과 같은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선호도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로스쿨을 졸업한 한 변호사는 “경쟁이 치열한 로펌 대신 안정적인 경찰 채용을 노리는 로스쿨 출신이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경찰의 변호사 출신 특채는 ‘수사권 독립’을 위한 자체 역량 강화와도 맥이 닿아 있다. 검찰은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주장할 때마다 ‘법률적 전문성을 갖추지 못해 시기상조’라는 논리로 반대해 왔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경찰대 출신 첫 경찰청장인 강 청장은 수사권 독립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며 “변호사 출신 경찰관이 장기적으로 경찰의 법률적 전문성을 높여 수사권 독립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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