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도 못나간 공무원연금 개혁
1주일 남은 대타협기구 활동
[ 강경민 / 이호기 기자 ]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 지난 1월8일 출범한 국민대타협기구의 활동 시한(3월28일)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야·정부와 공무원 단체는 타협을 위한 논의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70여일 동안 서로 책임 공방만 벌이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국회 처리 시한을 5월2일로 정한 여야 합의가 지켜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0일 “야당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안을 가져오라고 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대타협기구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합의를 끌어내고 (공무원 단체를) 설득하는 것은 여당의 몫”이라고 반박했다.
정부·與 “국민연금과 똑같이”
장기적으로 국민연금과 통합
재정 절감·연금 형평성 기대
새누리당과 정부가 제시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공무원연금 지급 비율을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춘 뒤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방식이다.
기여율을 높이고, 연간 지급률(1년 가입 시 재직 평균소득 대비 받는 연금 비율)을 낮춰 단순히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을 넘어 공무원연금 지급 체계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것이 정부의 재정 부담 완화와 연금 간 형평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11월 현재 연 1.9%인 지급률을 2026년까지 1.25%(30년 납입 기준)로 단계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내놨다. 공무원연금 지급률에 따라 퇴직 후 받는 연금액이 결정된다. 이렇게 되면 소득대체율은 현행 62.7%(1.9%×33)에서 37.5%(1.25%×30)로 크게 낮아진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40%)보다 낮은 수준이다. 지금까지 월 평균 소득이 100만원인 공무원은 퇴직 후 매월 62만7000원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37만5000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2016년 이후 임용된 신규 공무원의 지급률은 더 낮아진다. 신규 임용 공무원의 지급률은 1.15%에서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1.0%까지 낮아진다. 현행 국민연금 지급률과 똑같은 수준이다.
공무원 기여율도 재직자는 현행 7%에서 2018년 10%까지 올리고, 신규 임용자는 국민연금과 동일한 4.5%를 적용하는 안을 마련했다. 새누리당은 대신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노후 보장을 위해 현재 민간 기업의 39%인 퇴직수당을 민간 수준으로 현실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지난달 5일 내놓은 기초 제시안도 여당안과 거의 다르지 않다. 인사혁신처는 재직자 연금 지급률을 2016년부터 1.5%로 낮추는 방안을 내 畢? 소득대체율은 재직 공무원 기준 45.0%로, 새누리당 개혁안(37.5%)보다 높다. 대신 퇴직수당을 현실화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지출하는 돈은 사실상 똑같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새누리당과 정부가 공무원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이유는 현행 제도를 계속 유지할 경우 정부 재정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정부가 매년 메워야 하는 공무원연금 보전금은 2015년 3조원에서 2020년엔 두 배인 6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여권에서는 대선, 총선 등 선거가 치러지지 않는 올해야말로 연금 개혁을 위한 적기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오는 28일 종료되는 국민대타협기구의 활동시한 연장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타협기구에서 28일까지 100% 합의가 안 되더라도 최대한 합의해서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로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野·노조 “큰 틀서 그대로 가야”
조금 더 내고 덜 받는 구조
소득대체율 野 50%·勞 60%
새정치민주연합은 아직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자체 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민대타협기구의 각 참여 주체가 합의한 단일 안이 나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대타협기구 논의 과정에서 야당 측이 수차례 밝힌 원칙과 입장을 통해 야당 안의 대략적인 윤곽을 짐작해볼 수 있다.
현행 공무원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최고 62.7%(33년 재직 기준)다. 소득대체율은 현재 소득 대비 노후 연금액을 뜻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40%·40년 가입 誰?보다 20%포인트가량 높다. 국민연금도 2007년 제도 개혁을 통해 기존 60%였던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로 낮추도록 했다.
새정치연합은 공무원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최소 50% 이상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공무원노조 측은 60%를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9%)보다 높은 개인별 공무원연금 기여금(14%)을 대폭 올리지 않는 한 정부·여당 안(재직자 기준 37.5%)에 비해 재정 절감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정치연합과 공무원단체는 재직자와 2016년 신규 공무원을 차등화하는 데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공직 사회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공무원연금을 줄이는 대신 퇴직금을 민간 수준으로 현실화하겠다는 정부·여당 안에도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액 국민 세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퇴직금 부담으로 정부·여당 측이 내세우는 재정 절감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새정치연합 및 공무원단체 안은 연금 기여금을 일부 올리거나 소득대체율을 다소 떨어뜨리는 식의 ‘모수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 즉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을 테니 현행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얘기다.
새정치연합이 인사혁신처 측에 계속 공식적인 정부 안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도 새누리당과 정부가 무리하게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정부가 2008년 공무원연금 개혁 당시 공무원노조 측과 맺은 단체 협약에 따르면 ‘정부가 향후 제도 개선 시 조합과 공직 사회의 의견을 수렴해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한다’고 돼 있다. 공무원노조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독자 안을 낼 경우 단체협상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간 3자 회동에서 김 대표가 문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 안을 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인사혁신처가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강경민/이호기 기자 kkm1026@hankyung.com/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