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2004년 여름 샌프란시스코의 베트남 식당. 페이팔 출신 10여명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페이팔 공동창업자인 맥스 레브친의 29세 생일 파티였다. 누군가 ‘좋은 치과의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화제를 꺼냈다. 마침 자신들이 그런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며 러셀 시몬스와 제레미 스토펠만이 열심히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레브친은 이튿날 이 프로젝트에 100만달러를 투자키로 결정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비자 평판 사이트 옐프(Yelp)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창업도 협업할 때 시너지 큰 것
이날 모인 사람들이 ‘페이팔 마피아’다. 모바일 결제업체인 페이팔 출신 벤처기업가 또는 투자가들이다. 경제전문지 포천이 2007년 이들을 기사로 소개하면서 페이팔 마피아라고 처음 불렀다. 지난달 이 마피아의 대부 격인 피터 틸이 저서 제로 투 원 홍보차 방한하면서 국내에서도 다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선배인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외톨이로 사업을 개척해 온 것과 달리 창업도 협업할 때 훨씬 큰 시너지를 낸다는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투자하거나 창업해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이 된 기업이 이미 7개를 넘었다.
페이팔은 틸과 레브친이 만든 컨피니티와 엘론 머스크가 세운 엑스닷컴이 합병한 업체다. 이 회사가 2002년 이베이에 15억달러에 매각되면서 페이팔 임직원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수십 명이 페이팔을 나왔지만 대부분 실리콘밸리를 떠나지 않고 기업을 창업하거나 신생벤처에 투자했다. 이들이 성공사례를 쌓아가면서 페이팔 마피아는 실리콘밸리만이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파워그룹이 됐다.
틸은 벤처캐피털인 파운더펀드를 만들었다. 2004년 8월에는 당시 아무도 그 가치를 몰랐던 페이스북에 50만달러를 투자해 10%의 지분을 확보했다. 공동창업자인 레브친은 슬라이드닷컴을 만들어 구글에 1억8200만달러에 매각했다. 전기자동차업체인 테슬라의 창업자이자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머스크는 최근엔 스페이스X를 설립해 민간우주선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밖에 유튜브를 창업한 스티브 첸과 채드 헐리, 링크트인을 세운 리드 호프먼 등이 주요 멤버다. 천재적 엔지니어, 아이디어가 풍부한 기업가, 비즈니스 경험이 많은 관리자, 과감한 투자가들이 페이팔이란 이름 아래 만나 멋진 성공을 맛봤고 이제 그 성공 경험을 계속 재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벤처생태계 되살리는 모델될까
그런 점에서 한 번의 성공 이후 대주주로 남거나 다른 길로 가면서 ‘은둔형’이 되고 마는 한국의 벤처 1세대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들이 현장에서 활약할 때 후배들도 꿈을 키울 수 있어서다. 물론 토양이 더 문제다. 창조경제를 키운다며 오로지 지원 일색으로 나가는 정부 정책은 결국 수많은 ‘먹튀’들을 양산할 뿐이다. 기술금융이라는 것도 특허가 없으면 절대 받을 수 없으니 창업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러면서도 일반인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교류하며 소액을 투자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 같은 법안은 국회에서 썩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룻밤에 창업자금을 만들 수 있는 전 세계 수많은 벤처 ‘마피아’들을 이길 방법이 어디 있겠나. 그들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벤처 생태계를 되살릴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려 애쓸 뿐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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