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가구 경북 산골마을의 기적

입력 2015-03-11 22:14
수정 2015-03-12 04:07
폐쇄위기 봉화 분천역에 관광열차…10명도 안 찾던 곳, 하루 1500명 '북적'
오지마을에 스토리를 입혔다…100만명 부른 협곡열차·트레킹 코스

코레일 '역발상 경영'
적자나던 골칫거리 분천역, 2년간 열차 수익만 78억원

지역 주민들 함박웃음
특산품 팔아 수입 '짭짤'…식당·펜션·민박도 활기


[ 백승현 기자 ]
빈집이 늘면서 존립 기반이 흔들리던 경북의 산골 마을이 하루 관광객 1500여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67가구가 사는 봉화군 분천마을 얘기다.

‘분천마을의 기적’은 하루 이용객이 10여명에 불과해 폐쇄 위기에 몰렸던 분천역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비용 절감 대신 관광열차를 투입하고 주민들은 낙동강이 시작되는 천혜의 자연환경에 ‘산타마을’이라는 스토리를 입힌 역발상의 결과물이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도로, 공항, 항만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도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재정만 낭비하는 일부 기반시설 투자 사례들과 대비된다.

분천마을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5일장이 섰던 마을이지만 간이역 통폐합이 추진되면서 위기에 몰렸다. 마을 주민들의 마지막 희망의 끈은 관광열차였다.

김덕섭 분천2리 이장(55)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변 협곡이 좋으니 관광열차 같은 것이 들어오면 어떨까’라는 주민들 뜻을 코레일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분천역 이용객이 적어 적자를 보면서도 없앨 수는 없어 고민하던 코레일은 모험을 하기로 했다.

코레일이 주민들과 협의해 O트레인(중부내륙순환열차) V트레인(백두대간협곡열차)이라는 이름으로 관광열차를 투입한 것은 2013년 4월이다. 카페실 가족실 등으로 꾸민 O트레인(205석)은 서울~영주를 매일 1회 왕복하고, 화물열차를 개조한 V트레인(158석)은 O트레인 이용객이 철암역에서 내려 영주까지 가는 관람열차다.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폐허에 가깝던 산골마을에 하루 1500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았고, 감자 도라지 오가피 재배로 생계를 유지하던 주민들은 특산품을 팔면서 생업이 바뀌었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봉화군은 물론 태백, 제천, 단양 등 인근 지방자치단체는 각 지역의 홍보 팸플릿을 만들어 열차 내에 비치했고 버스를 이용한 연계 관광 상품 개발에 나섰다. 2014년 철암역에서 분천역까지 27.7㎞ 구간 곳곳에 트레킹 길이 조성되면서부터는 전국의 등산객까지 가세해 방문객이 점점 늘었다. 양원역과 승부역 트레킹 구간인 ‘양원~승부 비경길’(5.6㎞)은 낙동정맥(강원 태백에서 부산 다대포 몰운대까지 연결된 산줄기의 옛이름) 트레일 구간으로 트레킹 마니아들만 찾던 곳이다.

코레일 집계에 따르면 O·V트레인 이용객은 지난해 말까지 62만3538명이었다. 여기에 관광버스와 승용차를 이용한 관광객을 더하면 2년간 100만명가량이 분천마을을 다녀갔을 것이라는 게 김덕섭 분천2리 이장의 설명이다.

관광객 급증과 함께 코레일의 수익도 수직상승했다. 같은 기간 두 관광열차로만 코레일이 벌어들인 수익은 78억원이었다. 관광열차와 연계된 중앙·태백·영동·경전선 등 일반 열차 이용객도 지난해에만 67만명(5.2%) 늘었다. 충북대 사회과학연구소는 중부내륙관광열차 투입으로 1336억원의 생산유발 효과, 1688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공사 설립 9년 만에 첫 흑자를 기록한 코레일에 O·V트레인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역발상 경영 효과는 분천역에 또 하나의 스토리가 입혀진 지난해 12월 절정에 달했다. 코레일과 봉화군, 지역 주민이 함께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2개월간 분천역 산타마을을 조성했다. 58일간 10만6294명, 하루 평균 2000명가량이 봉화산골 분천마을을 방문했다.

기자가 분천역을 찾은 것은 지난달 25일, 관광 비수기인 데다 평일이었지만 O트레인에는 빈자리가 많지 않았다. 열차에서 만난 박윤구 또또산악회(서울 마포구 등산모임) 회장(65)은 “한 달 전에 예약하려고 보니 표가 부족해 역을 두 번이나 방문해서야 겨우 구했다”며 “기차여행, 트레킹, 눈꽃구경까지 일석삼조 여행 코스라 오늘 46명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불과 2년 만에 지역 경제가 확 살아났다. 밀려드는 관광객을 맞기 위해 분천역 인근에만 펜션·민박이 12개 생겼고 분천으로 가는 길목인 양원역 등 정차역에는 ‘상권’이 형성됐다. O트레인이 약 10분간 정차하는 양원역에서 막걸리와 특산품을 파는 주민들의 손에는 지폐가 한 다발씩 들려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작은 역인 양원역은 인근 주민들이 삽과 곡괭이로 직접 만든 역으로, 코레일이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열차를 잠시 세워주고 있다.

김 이장은 “예전에는 주민들이 새벽에 밭일을 하거나 남의 집 일을 해주고 일당 4만~5만원을 받았는데, 이제는 열차 한 대 지나가면 잠깐 동안 그 이상을 번다”며 “마을에 활기가 도니 관광열차를 반대했던 주민들도 대부분 좋아한다”고 말했다.

분천역 소식에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귀향한 경우도 있다. 분천역 앞에서 영업 중인 식당은 모두 여덟 곳. 이 중 두 곳의 주인은 도시로 떠났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송이식당’을 운영하는 박주현 씨(36)는 “매출이 들쑥날쑥하기는 하지만 손님이 많은 날에는 하루 130만원까지 팔아봤다”며 “아무래도 산속이라 불편한 점이 있지만 소득이나 삶의 질은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역앞 마을 땅값은 2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뛰어 3.3㎡당 100만원 수준”이라며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10년이 지나도록 고향을 찾지 않던 자식들이 자주 내려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봉화=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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