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벚꽃여행
교토·오카야마·도쿄
[ 김명상 기자 ]
일본어로 하나미(花見)란 ‘꽃구경’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으뜸은 벚꽃구경이다. 일본인에게 벚꽃구경은 단지 예쁜 꽃구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8세기께부터 궁정에서 즐기던 벚꽃놀이는 1603년부터 시작된 에도시대에 접어들면서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일본인은 벚꽃이 만개하면 가족이나 친구, 회사 동료들과 벚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파티를 즐긴다. 짧은 시간 화려한 핑크빛 폭죽을 터뜨린 뒤 순식간에 져버리는 벚꽃과 어딘지 닮은 모습이다. 벚꽃명소에선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회사 신입사원들은 회식일까지 밤을 새워 좋은 곳을 지키는 것이 주요 임무일 정도. 오랜 전통만큼 일본에서 만나는 벚꽃은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취를 전한다.
고즈넉한 밤 벚꽃이 사방에 가득히
1000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 교토다. 교토의 벚꽃이 특별한 이유는 오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천년고도의 고색창연한 목조 건물이 분홍빛에 감싸일 때면 색의 절묘한 대비와 함께 여행객을 봄의 절정으로 안내한다. 4월에 교토에 가면 사방이 꽃 천지다. 그중에서도 기요미즈데라( 外⒭?, 마루야마공원(円山公園), 기온으로 이어지는 길은 산보하며 꽃구경하기 알맞은 코스다.
해발 282m 언덕에 있는 기요미즈데라는 교토의 대표적인 벚꽃명소로 한국 여행객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벚꽃 개화 기간에 기요미즈데라에서 열리는 라이트업(light up) 행사는 밤 벚꽃을 뜻하는 요자쿠라(夜)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알록달록한 조명이 벚꽃과 어우러지면 조용한 경내가 화려하게 치장한 게이샤처럼 요염해진다.
올해 기요미즈데라의 봄 야간 특별 관람일은 3월28일~4월12일이며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이어진다. 야간 라이트업 행사는 일본 전국 어디나 인파로 크게 붐빈다. 따라서 최소 1시간 전에 줄을 서서 입장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 있는 관람을 원한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다. 입장료 성인 300엔, 초·중학생 200엔. 야경 특별 관람료는 평소보다 100엔이 더 비싸다. 기요미즈데라 홈페이지(kiyomizudera.or.jp) 참조.
교토의 또 다른 벚꽃 명소인 마루야마공원에는 수령 80년이 넘은 거대한 수양벚꽃이 있다. 가지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이 수양벚꽃은 낮에 보면 눈이 시리고, 밤에 보면 황홀감에 눈물마저 난다는 표현이 있을 만큼 멋진 정경을 선사한다.
벚꽃 바다의 물결이 휘몰아치다
오카야마현의 가쿠잔공원(鶴山公園)은 한국 여행객에게는 다소 생소한 곳이다. 하지만 벚꽃에 관한 한 일본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곳으로 한 번 방문하면 그대로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절경을 자랑한다.
공원이 있던 자리는 원래 성이 있던 곳이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73년 폐성(廢城) 명령에 따라 모든 건물이 해체되고 높이 45m에 이르는 돌담만 남았다. 다만 2005년 축성 400년을 기념해 복원된 망루가 예전의 당당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공원 내부에는 왕벚나무 등 10종류, 약 1000그루의 벚꽃이 자라고 있는데 매년 4월이면 공원은 온통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뒤덮인다. 매년 4월1일부터 15일까지 쓰야마 벚꽃축제가 열려 약 10만명이 몰리는 대성황을 이룬다.
가쿠잔공원의 특징은 성벽에 올라 벚꽃을 내려다보면 더욱 장관이라는 것. 성으로 향하는 길은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구불구불하게 빙 둘러놓았는데 산책하듯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성벽까지 올라가면 ‘벚꽃의 바다’에 놓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넘실대는 분홍 물결과 만개한 벚꽃이 발산하는 향에 취하면 그야말로 봄의 절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JR쓰야마역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는다. 벚꽃축제 기간에는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개방한다. 어른 300엔, 중학생 이하 무료. 쓰야마시 관광협회 tsuyamakan.jp/see/
시끌벅적한 도심 속 벚꽃놀이의 현장
도쿄를 대표하는 우에노공원(上野公園)은 일본 최초면서 도쿄에서 가장 넓은 공원이다. 간에이사를 건립한 한 승정이 산에서 가져온 벚꽃을 심은 것을 시작으로 도쿄 최고의 벚꽃명소로 자리 잡았다. 왁자지껄한 일본의 벚꽃문화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이곳이 딱이다.
벚꽃 개화 기간의 우에노공원은 인파로 넘실댄다. ?1200그루의 벚나무가 300m 가까이 이어지는데 만개 시기의 주말에는 100만명에 가까운 상춘객이 몰린다. 3월 중순에서 4월 상순까지 개최되는 벚꽃축제 기간에는 라멘, 솜사탕, 카스텔라, 야키소바, 다코야키 등 다양한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밤에 1300여개에 달하는 등불이 켜지면 은은한 운치로 물들고, 함께 걷는 연인들의 눈은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는다.
이 밖에도 우에노공원 주변에는 각종 박물관, 미술관이 있고,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의 아메요코 시장도 자리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단 벚꽃 개화 기간에는 다소간의 혼잡을 각오해야 한다. JR우에노역에서 공원까지 걸어서 1분 걸린다. kensetsu.metro.tokyo.jp/toubuk/ueno/index_top.html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