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특진 거듭해 4년제 출신 따라잡은 '악바리 CEO'

입력 2015-03-08 15:30
수정 2015-08-30 22:41
지식경제사회에 걸맞은 인재상은 '간판보다 실력'입니다. 안전제일 직업관을 벗어던지고, 청년층이 잡프런티어의 주역이 돼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스펙초월 채용문화'로의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경닷컴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롤모델이 될 전문 지식인과 맞춤형 전문대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성백형 백자종합건설(주) 대표(59·사진)는 유년시절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조숙한 그는 스스로 공고에 진학했다. 청량공고(현 경기기계공고)를 1등으로 졸업했다.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두 형이 모두 대학을 다니고 있어 말을 못 꺼냈다. 1970년대의 얘기다.

성 대표는 대학 대신 측량회사에 취직했다. 3개월간의 교육평가에서 1등을 차지했다. 2년 일한 뒤 회사로부터 네덜란드 유학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항공측량 분야로 한정된 일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좀 더 성장하려면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학 대신 대림공전 토목과(현 대림대 토목환경과) 진학을 택한 이유였다.

그렇게 들어간 대림공전에서도 그는 1회 졸업생 중 전체수석을 차지했다. 덕분에 학교의 모기업인 대림산업(주)에 입사할 수 있었다. 진짜 경쟁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됐다.

“4년제 출신과 학교는 2년 차이인데 호봉은 4년 차이였어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현장 나가면 한 달에 보름은 새벽 1~2시까지 근무했죠. 대림산업에서 13년 일했는데 10년을 특진(특별진급)했으니까요. 1년에 2호봉 올라가는데 특진하면 3호봉이 올라요. 결국 따라잡았죠.”

회사엔 이름난 4년제대 출신들이 많았지만 기죽지 않았다. 성 대표는 모범상을 받고 5년 뒤엔 직종별로 한 명에게만 주는 우수사원상도 수상했다. 한 번 수상하면 5년간 상을 못 받는 게 회사 내규였다. 제한 기간을 채우자마자 곧바로 상을 또 받은 건 성 대표가 처음이었다고.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 흔했어요.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회사에 열심히 기여한 사람이 더 인정받는 거니까요. 토목 직종 640여명 중 혼자 뽑혀 상 받았으니 기억에 남죠. 시상식 자리에 대림공전 학장님도 계셨어요. 학교 때 영어 가르쳐준 교수님이었습니다. 제자가 유명 4년제대 졸업생들 제치고 상 받으니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성 대표는 1992년 대림건설을 나와 회사를 설립했다. 첫해 매출 13억원이었던 회사를 150억원 규모까지 키웠다. 지금도 연 매출 70억~80억원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학사(경기대)와 석사(중앙대) 학위도 받았다. 밤잠 안 자면서 공부하고 일한 결과물이었다. 모교에서 강의까지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열심히는 살았습니다”란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전문대 교육 정도면 어디서든 통할 수 있습니다. 공고 나와 대림공전 갔고 대림산업 들어갔어요. 편입하고 창업했고 강의도 하고. 제 인생 자체가 도전이었습니다. 열심히 살다보니 기회가 왔고, 그때마다 두려워 않고 도전했죠. 후배들에게도 늘 자신감과 도전의식을 강조합니다.”

천안=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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