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EO - 리카싱 홍콩 청쿵그룹 회장
[ 강동균 기자 ] 리카싱(李嘉誠) 홍콩 청쿵그룹 회장(87)이 승용차에서 내리다가 동전을 하나 떨어뜨렸다. 1홍콩달러(약 150원)짜리 그 동전은 얄궂게도 하수구 덮개 속으로 굴러 들어갔다. 리카싱은 비서를 시켜 하수구 덮개를 들어내고 동전을 줍게 했다. 비서가 동전을 주워주자 리카싱은 100홍콩달러(약 1만5000원)짜리 지폐를 비서에게 수고비로 건넸다. 리카싱이 돈을 어떻게 아끼고, 어떻게 쓰는가를 잘 말해주는 일화다.
리카싱은 홍콩 최고 부호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그의 자산은 총 335억달러(약 36조7000억원)로 1999년 이후 17년 연속 홍콩 최고 부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홍콩의 살아 있는 신화
리카싱은 홍콩에서 ‘상신(商神·장사의 신)’ 혹은 ‘초인(超人·슈퍼맨)’으로 불린다. 홍콩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리카싱을 떠난 삶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720만 홍콩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리카싱 제국’과 더불어 생활한다. 리카싱 소유인 홍콩 晥?HKE)에서 전기를 공급받고, 최대 통신·인터넷 회사 ‘PCCW’와 홍콩텔레콤을 매일 이용한다. 홍콩 사람 10명 중 4명은 리카싱이 운영하는 슈퍼마켓 ‘파큰숍(Parknshop)’에서 일상용품을 산다. 약품과 화장품은 청쿵그룹 우산 아래 있는 왓슨(Watsons)에서 사고, 전자제품을 살 때도 홍콩인 중 절반가량은 리카싱의 전자양판점 ‘포트리스(Fortress)’를 찾는다. “홍콩 사람이 1달러를 쓰면 그중 5센트는 리카싱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리카싱은 장제스의 국민당이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을 초토화하기 위해 중국 대륙 소개 작전을 벌이던 1928년 광둥성 차오저우(潮州)에서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1940년 아버지 리윈징은 가족을 이끌고 홍콩으로 피란했지만 폐결핵으로 1년여 만에 사망했다. 장남인 리카싱은 동생 셋과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생업을 위해 그는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돈이 된다면 뭐든지 마다하지 않았다. 찻집 종업원에서 시작해 외삼촌 가게 잔심부름, 금은방 거리 판매원 등 하루 16~20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다. 15세부터는 외판원으로 일하며 2년 뒤 최고의 세일즈맨이 됐다. 22세 때인 1950년 5만홍콩달러(약 600만원)를 빌려 청쿵그룹의 모태인 청쿵 플라스틱을 세웠다. 이후 이 회사는 청쿵실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근면성실과 철저한 시류 분석으로 성공
유학자 집안 출신인 리카싱은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학업은 중단했지만 소문난 독서광으로 뉴스와 상식에 해박했다. 할아버지는 청조 말기 수재였고 아버지는 소학교 교장이었다. 청쿵실업은 우연히 ‘조화(造花)’를 만들게 되면서 단일 조화 제조업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큰 성공을 거머쥐게 됐다. 그가 조화사업을 벌인 계기는 영문 잡지에 나온 “이탈리아의 한 화학회사가 플라스틱 조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조업으로 제법 큰 돈을 벌게 된 리카싱은 부동산 투자 및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홍콩이 중국 내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동시에 남태평양을 맞대고 있는 지리적 요충지라고 판단해서다. 홍콩 경제가 본격적으로 도약하기 전 싼값에 부동산을 대량 매입하고 차액으로 수익을 올려나갔다. 부동산 개발회사로 탈바꿈한 청쿵실업은 1972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1호 기업이 됐다.
리카싱은 부동산에서 번 돈으로 1979년 영국계 항만물류 기업 허치슨 왐포아를 인수했다. 중국계 기업이 영국 대기업을 인수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 홍콩전력, 캐나다 허스키에너지, 영국 이동통신회사 스리 등 비부동산 업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그의 사업은 호텔, 증권 투자, 항만 컨테이너 소매, 제조, 통신, 에너지, 인프라 건설 등으로 뻗어나갔다. 40대에 그는 홍콩 대표 기업인 중 한 명이 됐다.
자타가 공인하는 리카싱의 성공 비결은 근면성실하고 시류를 철저히 분석한다는 것이다. 그는 12세 이후 학교에 다닌 적이 없지만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중·고교 교과 과정을 혼자 공부했다. 지금도 매일 한 시간씩 영어뉴스를 듣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카싱은 자신의 공부 방법에 대해 “헌책을 구해 읽고, 다 읽은 후에는 그것을 팔아 또 다른 중고책을 샀다”고 말한다.
최근 그룹 구조 개편에 나서
리카싱은 6개월 전부터 청쿵그룹 구조개편에 나섰다. 그룹 산하의 부동산 투자회사 청쿵실업과 항만·통신·소매사업을 관할하는 허치슨 왐포아를 합병한 뒤 부동산과 비부동산 사업으로 나눠 2개 지주회사(CK부동산과 CKH홀딩스)로 재편하는 게 골자다. 청쿵실업과 허치슨 왐포아의 부동산 자산은 CK부동산으로 넘어가고, CK부동산은 홍콩에 집중한다. 허스키에너지와 스리 등의 지분은 CKH홀딩스로 이동한다. 세계 50여개국의 자회사는 CKH홀딩스 밑으로 편입된다. 현재 청쿵실업의 지분 43.42%를 보유한 리카싱 일가는 합병 이후 CKH홀딩스와 CK부동산의 지분을 총 30.15% 갖게 된다.
이 같은 사업 재편에 대해 일각에서는 리카싱이 홍콩을 떠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청쿵그룹의 신규 지주법인을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캐이맨제도에 등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리카싱은 최근 2년간 중국 본토 자산을 꾸준히 처분했다. 2013년 7월 슈퍼마켓 체인 바이자(百佳)를 매각했고 상하이 루자쭈이 오리엔탈파이낸셜센터(OFC)와 베이징의 잉커센터를 팔았다. 2013년 이후 처분한 부동산 규모만 250억위안(약 4조4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다른 나라에 대한 투자는 확대하고 있다. 이미 호주와 아일랜드, 네덜란드, 캐나다 등에서 기업과 각종 자산을 사들이는 데 300억홍콩달러를 투자했다.
그의 ‘홍콩 탈출’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2세로의 경영승계를 위한 포석이란 시각이 제기된다. 중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승계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베이징과의 균열 때문이라는 정치적 시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패 척결 정책이 리카싱의 경영활동에도 제동을 걸면서 관계가 틀어졌고, 지난해 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리카싱이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불화가 더욱 커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2013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때 시 주석의 의중과 다른 후보를 지지해 시 주석의 눈 밖에 났다는 설도 나온다. 홍콩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그의 ‘홍콩 탈출’ 가능성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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