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보는 재테크] '식민풍수'는 오늘도 흐른다

입력 2015-03-02 07:02
올해 아흔 여섯이다. 목청 터져 쏟아냈던 핏물이 온 강토를 적시던 ‘대한독립만세운동’의 나이다. 100세를 바라보는 망백(望百)의 세월은 그 시절 청춘들을 한 줌의 재로 만들고 자취조차 묘연케 했다. 하서 김인후의 ‘산절로 수절로 나절로…’처럼 사람이야 저절로 그렇게 태어나 죽는 것이니, 아깝고 안타까워도 돌이킬 바가 없다. 한데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우리 민족의 정신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인이면 한 번은 들어봤을 ‘비애미(悲哀美)’는 일본인 종교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의 작품이다. 일명 한(限)스런 슬픔이다. 그는 예술이란 민족이 가진 마음의 표현으로, 백의민족의 백(白)은 비애의 상징인 결핍, 생활의 즐거움을 잃어가는 상복(喪服)이라 했다. 고구려 벽화의 뱀이 거북을 휘감은 유연한 곡선은 쓸쓸함을 위로받기 위한 불안정한 마음의 표상이라 단언했다. 주자가례의 의복 제한도, 시대적 화풍도 이해하지 못했던 학자가 우리에게 비애(悲哀)의 한(限)이라는 짐을 씌웠다.

이 비애미는 ‘자연은 조선이 밟아야 할 운명의 방향을 정했다’는 자연 인식에서 시작된다. 땅은 편안하지 않고 봉우리는 가냘프고 나무는 성글고 꽃은 퇴색한, 대륙도 섬도 아닌 눈물의 반도라는 이해다. 3·1 운동으로 가슴 졸인 일제의 국토 유린은 한민족 사상의 이해라는 미명 아래 철저한 파괴로 진행된다. 그 중심에 ‘식민 풍수’가 있었다. 전국 228개 경찰서에 조사 항목표를 보내 전국 명당을 파악하라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전국에 날고 긴다는 풍수가 13인을 관방과(官房科)에 배속해 13인회를 발족했다. 전국의 산과 강은 이들에 의해 손과 발이 잘리고 뼈에 대못이 박혔다.

크게는 전국 각 고을을 진호하는 진산(鎭山)들에 정을 쳐서 심장을 멈추고, 산의 이름을 바꿔 산경(山徑) 족보의 근본을 없애 조화로움을 파괴했다. 작게는 독립운동 투사들의 생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기운을 막았다. 안동 임청각이 까닭 없이 둘러 지나는 철도에 의해 반 토막 난 이유다. 유적을 파괴하고 민족을 말살하고 재물을 분탕질한 경우는 그나마 예쁜 축에 속한다. 산천을 흔들어 풍토를 바꾸고 그 삶터의 정신을 ‘비애’라는 괴로움과 슬픔 속으로 밀어 넣었던 만행이 우리의 손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언젠간 밝혀질 아픔의 역사다. 식민풍수는 누가 했느냐보다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한지 모른다. 우리 산하에 면면히 흐르던 정신이 아직도 ‘한(限)’이라 얘기되는 것은 치유되지 못한 국토의 아픔 탓이다. 오늘도 산천은 잘려나간다. 광복 70주년. 국토는 식민지로 여전히 아프다. 풍수학인들의 반성이 필요한 오늘이다.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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