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러시아 방문…北 김정은 참석 여부는 고려사항 아니다
高고도미사일 '사드' 뜨거운 감자 되겠지만 전략적으로 해결할 것
TPP·FTA 등 경제협정 국가간의 대결 아닌 투자 관점서 바라봐야
[ 전예진/김대훈 기자 ]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4일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해 대(對)미국·중국·일본 정책을 비롯한 외교 정책 전반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했다. 윤 장관은 한·미, 한·중 관계가 역대 최상이라면서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윤 장관은 다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일본의 인식이 어떻게 표명될지에 따라 (한·일 간)현해탄과 (중·일 간)동중국해의 파고가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포럼 회원들은 G2로 표현되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 전략과 실효성 있는 대일 외교 정책 수립 등을 주문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작년부터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연 국장급 회의의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본은 이 협의를 통해 국제사회에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지 않아 우리 외교부가 끌려다닌다는 비판이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우리 글로벌 외교의 유일한 미싱링크(missing link)가 일본이다. 이유는 대부분 일본에서 비롯됐다. 한·일 수교 50년 동안 일본 지도자들은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를 통해 식민문제와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표명했지만 아베 정부 들어 퇴행적으로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문제를 보는 시각이 우리와 다르다는 데 있다. 일본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의 보상이 끝났다는 입장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국장급 협의를 통해 의견 차이를 좁히는 게 해결의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한·일관계도 아웃복싱이 필요하다. 감정에 휘말리거나 과거에 갇혀서 티격태격해선 안된다.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가치에서 인권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본을 품위있고 체계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 할 이유는 없다. 독일과 공조해야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대비시키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독도 문제는 전 세계가 한국이 독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역사와 문화 콘텐츠를 보강해주길 바란다.
▷윤 장관=독일과는 미국 못지않게 공조하고 있다. 독일로부터 배울 점 두 가지는 통일 경험과 과거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다. 메르켈 총리가 지난달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 행사에서 “반성은 독일 국민의 영원한 의무”라고 천명했듯이 독일은 그동안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고 반성했다. 이것이 우리 지역에도 가능했다면 한·일관계의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전 교수=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대화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오는 5월 러시아 전승 70주년 기념일 행사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지, 김정은과 만날 가능성은 있나.
▷윤 장관=정부 입장에서 김정은의 참석 여부가 중요한 고려 사항은 아니다. 우리의 외교 일정과 한·러관계, 국제사회 동향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마지막 단계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올해 주요 행사들이 많다. 4월 말 인도네시아에서 반둥회의 60주년 비동맹 정상회담이 있고 9월에는 중국의 항일전승기념일 행사도 예정돼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박 대통령이 가시나, 안 가시나.
▷윤 장관=지금 결정하기엔 아직 이르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도 대부분 결정을 못했다.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
▷정 실장=미국은 참석하지 말라는 의사표현을 하고 있지 않나.
▷윤 장관=그렇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참석 문제에 대해 영어로 하면 아주 ‘enthusiastic(열성적)’하지는 않다.
▷신희택 서울대 교수=공적개발원조(ODA)가 컨트롤 타워 없이 중구난방이다. 확실한 프레임이 없다. 산업계와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윤 장관=ODA 정책이 갈등을 빚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원조 철학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유상이든 무상이든 ODA를 우리 기업의 이익과 직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도주의적 수혜가 결과적으로 기업 이익에도 도움되는 것인데, 이것이 반대로 되면 안된다. ODA의 본질과 배치되는 것이다. ODA의 추진 방향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개도국들이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신 교수=각종 경제협정이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 정무적 입장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다루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외교부가 관여하기도 하고 투자협정은 다른 주무부처가 맡기도 한다. 이런 협정은 권리, 의무와 관련된 직접적인 문서로 활용되고 있어서 중요한데, 이를 법률적으로 다룰 전문가가 부족하다.
▷윤 장관=법률가를 많이 키워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정상 법률 전문가를 정부 내에서 조달하기 쉽지 않다. 앞으로 학계에서 인력 풀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통상기능이 산업부로 넘어갔는데 훈수를 둔다면.
▷윤 장관=외교부로선 아쉬운 점이 많지만 산업부와 협업 시스템을 통해 FTA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외교부는 경제 정치 외교 안보를 통합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어 통상 측면에서 볼 때 보다 훨씬 넓게 사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일반 경제부처와 접근법이 다를 수 있다. 외교부는 정부 내에서 전략적인 방향을 보는 데 중점을 두고 기여하고 있다.
▷장종현 비앤 ?씻美??대표=경영인의 시각으로 볼 때 외교는 불확실성의 원인을 제공하는 원천이다. 적시에 명확한 해결법이 나오기 힘들다. 한국은 운명적으로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있어서 우리 외교에 한계가 있다. 결국 미·중 G2의 싸움에서 ‘팻감’밖에 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윤 장관=외교의 불확실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외교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운전면허협정, 미사일협정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러시아와 비자면제협정을 맺었더니 작년 한국을 찾은 러시아인이 16만여명으로 전년보다 40%나 늘었다. 이례적인 현상이다. 아랍에미리트(UAE)와 몇 가지 협정 체결 후 경제적 효과가 컸다. 이번에 박 대통령의 중동 순방(3월1~9일) 이후에도 ‘대박’ 날 것이다.
▷정 실장=한국이 미국 중국 사이의 ‘팻감’인가.
▷윤 장관=G2 사이 한국이 끼어 있다는 ‘샌드위치론’이 있지만, 우리 국력을 19세기 말과 비교하는 건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전략적 위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미·중 간 갈등이 있지만 미국은 한·중관계의 발전을 지지한다. 북핵문제,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중국해의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을 때 우리나라가 60여년 만에 국익에 맞는 방향으로 조정했듯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략적인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고(高)고도 요격미사일 사드(THAAD)가 뜨거운 감자가 되겠지만 G2 간 갈등의 희생양이 된다기보다는 파도를 탄다는 입장에서 지혜롭게 극복할 방안을 찾고 있다.
▷정 실장=한·중 FTA 때문에 (미국이 주도하는) TPP 가입에 문전박대 당한 것 아닌가.
▷윤 장관=TPP가 미국이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란 시각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많은 나라가 참여할 가능성이 커졌다. 양자를 넘어 ‘메가 FTA’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를 국가 간 대결로 보기에 앞서 어떤 게 투자를 자극할지에 초점을 맞춰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곽창호 포스코경영연구소장=중국 외교연구원장이 한국은 중국의 주변국 중 하나고, 일본은 더 중요한 국가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한국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윤 장관=중국 고위 관계자를 만나면 한국은 가장 중요한 이웃이고 동반자라고 한다. 한·중 관계가 나쁘다면 관광객 1000만명(2013년 기준, 한·중 상대국을 방문한 관광객 수)이란 수치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한·중관계를 신뢰하고 있다. 이것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해결한 사례도 있다. 시 주석이 직접 지시한 사항도 꽤 있다.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장=통일부 장관의 교체가 대북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윤 장관=박근혜 정부는 출범할 당시 대북 정책에서 상당히 큰 청사진을 마련해 놓았고 현 시점에선 보완해나가는 과정이다. 새 장관이 와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는 컨트롤 타워를 중심으로 국익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어낼 것이고,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전예진/김대훈 기자 ace@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