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48. 조영거 '짧은 소설로 본 인디게임'
시장은 늘 변화한다. 게임 시장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수많은 게임들이 거대한 흐름 속에 나타나고 잊혀져간다. 그 중에서도 인디 게임은 늘 새로운 시장의 선두에서 서 있다. 가장 도전적이고 날이 서있는 게임들로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그러나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인디 게임의 반짝임은 네온사인의 현란함에 묻히기 마련이다. 여기에 유저를 용사로, 인디 게임 개발자를 장인에 빗댄 짧은 소설 한 편이 있다.
웹이미지. 출처 = http://abstract.desktopnexus.com/wallpaper/1228340/ 용사는 전설의 장인을 찾아 나섰다. 마왕을 무찌를 만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전설의 장인이 있는 곳을 묻고 물었다. 누군가는 북쪽 산맥 깊숙한 곳 안개 숲 근처에서 보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해협 건너 동방의 작은 도시에서 보았다고 했다. 그마저도 2년 전의 소식이고 최근에는 모두 죽었다느니, 마왕에게 사로잡혀 마왕의 무기를 만들어주고 있다느니 했다. 처음엔 사실 전설의 장인이라느니 그런 이름도 아니었다. 어느 새 전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용사는 낙담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 이 모험을 떠났을 때만 해도 단순히 무기 때문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돌아다니는 몬스터를 때려잡거나 동네 꽃집 아가씨가 주는 퀘스트(게임 과제)만 척척 해나가기만 해도 될 때가 있었다. 연습용 검, 짧은 검, 근위병의 검, 기사의 검… 5년 동안의 모험 내내 용사의 무기는 용사의 레벨과 함께 차곡차곡 강력해져갔고 이제는 평타(일반 공격) 데미지가 100씩이나 들어가는 것이다! '쪼렙(쪼만한-조그마한, 낮은레벨)'이었을 때 데미지가 1밖에 안 들어갔으니 무려 100배나 성장한 것이다.
동영상 캡처. 출처 = 마오유우 마왕용사 용사가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흉물스런 오우거(종족명) 무리가 득실대는 딥-다크-던전에 오전부터 입장하여 여섯 시간의 지루한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던전 입구에서 전리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포션(물약)이 36개, 마력 깃든 야생 칡뿌리 20묶음, 화염에 ??가죽장화 7벌, 광기어린 오우거 전사의 판금갑옷 4벌, 연습용 검 923자루… 어라, 연습용 검? 용사는 눈을 씻고 다시 쳐다보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연습용 검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이런 무시무시한 던전에 왠 쪼렙용 무기? 어제까지만 해도 장인의 정성이 듬뿍 담긴 쓸만한 한손 도검을 몇 자루씩 드랍하던 놈들이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상점에 팔지도 못한 연습용 검만 수 백 자루씩 드랍하고 있다.
형편없는 무기를 드랍하는 현상은 그날 이후로 그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계속됐다. 그날 하루 재수가 없었던 것이겠지 했던 생각은 이제 더 이상 모험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되어 돌아왔다. 지금 쓰고 있는 기사의 검은 앞으로 세 번의 전투면 내구도가 0이 되어 버린다… 왜 그동안 쓸만한 검들을 죄다 용광로에 녹여버렸는지 후회가 막심하다. 어라? 가만보자… 검이야 장인에게 부탁해서 만들어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 왜 이런 생각을 못했지? 용사는 이제서야 떠올랐다는듯이 무기 장인을 찾아나섰다. 그래 장인이야 마을마다 있지 않은가. 그냥 하나 만들어달라고 하면 되지!
그런데 장인이 사라졌다. 그 어느 마을에서도 장인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연습용 검을 만들만한 장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용광로가 서너 개는 될 듯한 시장 한 가운데의 대형 대장간에서는 연신 쇳물을 거푸집에 들이부어가며 한 시간에 수 십 자루씩 연습용 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용사는 이제서야 어렴풋이 지난 몇 달 간 마을에서 무기를 만들어내는 장인의 숫자가 한 명씩 한 명씩 줄어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프의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세검으로 유명했던 빨간 벽돌의 대장간도 문을 닫았고 검신에 단 하나의 흠집도 허용치 않았던 고집쟁이 노인네의 대장간도 문을 닫았다. 남은 것은 연습용 검만 끊임없이 찍어내는 압도적인 크기의 대장간 하나였다.
출처 = http://indefinitelywild.gizmodo.com 용사는 이제서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모험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은 몬스터 천지였다. 마을에서 조금만 멀리 나서도 뒤틀린 황천의 맷돼지니, 암흑불길의 비룡이니 하며 여행객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여행을 하려고 하면 대개 열댓명의 용병을 대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용사가 처음 모험을 떠난 후로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몬스터는 용사의 검 앞에 쓰러졌고 어느샌가 몬스터는 던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희귀종이 되어버렸다.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마을 주변엔 그저 연습용 검이면 충분한 몬스터만 남았다.
평화는 장인들의 생계를 위협했다. 세상 누가 뭐래도 최고의 검을 만들던 장인들의 명검은 예전이라면 일주일에 적어도 한 자루 씩은 팔려 나갔다면 지금은 석 달에 하나 팔리기도 버거웠다. 아무도 그런 비싼 검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가장 질이 좋다는 발리리아 산 철광석을 녹여내 오색용의 숨결로 벼려내고 정령의 심장 조각을 박아넣은 검은 헐값에 팔려나갔다.
장인들은 평화가 찾아온 도시를 떠나 바다 건너 먼 곳으로 떠났다. 물론 모든 장인이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소수의 장인들은 연습용 검이 오히려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것에 착안하여 힘을 합쳐 대형 대장간을 만들고 빠르게 많은 수의 연습용 검을 찍어내었다. 예전 같으면 검을 대충대충 만든다고 홀대받던 부분들이 되레 장점이 되었다. 연습용 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용사는 절망했다. 몇 번 씩이나 연습용 검 수 백 자루를 꿰차고 던전에 들어가 보았지만 그 때마다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이 검인지 고구마인지를 의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레벨도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하루에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서 도망쳐 나왔는지 모른다. 세상은 평화로워졌지만 용사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느낄 수 없었다. 전설의 장인만이 용사를 구원해 줄 것이다.
웹이미지. 출처 = gvozdenkoyura.deviantart.com 전설의 장인을 찾아나선 용사가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용사가 마침내 전설의 장인을 찾아낸다고 한들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인지도 알 수 없다.</p> <p>한경닷컴 조영거 객원기자 jo@novn.co
■ 조영거는?
2007년 넥슨에서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로 업계에 뛰어들었다. 2009년부터 스마트폰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p> <p>1인개발 인디게임인 'RPG Snake'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후 넥슨 공동개발 프로젝트인 '버블파이터 어드벤처'를 출시하는 등 꾸준히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오고 있다.</p> <p>2013년부터 새롭게 설립한 모바일 게임 개발사 노븐(NOVN)으로 차세대 소셜 게임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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