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의 '겨울 도시' 터키 트라브존, 1000년의 시간 훌쩍 넘고…언덕 위 만찬을 즐기다

입력 2015-02-16 07:01

겨울이 되면 유독 생각나는 도시가 몇 있다. 그중 한 곳이 터키의 북동부 흑해 연안에 있는 트라브존이다. 북동부에 자리한 터키의 도시 중 가장 크다. 트라브존은 한때 흑해의 무역 중심지로도 번성했는데, 유럽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가장 높은 보즈테페 언덕에 오르면 트라브존의 도시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흑해의 해안선을 따라 유럽 같기도 하고, 지중해 같기도 한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우뚝 솟은 이슬람 모스크의 미나레트만이 다를 뿐. 1000년이 훌쩍 넘은 중세의 수도원이 남아 있는 신비로운 도시이자 터키 흑해 연안의 중심 도시인 트라브존에는 남다른 향기가 떠다닌다.

절벽 위에 지은 1000년 수도원

붉고 짙은 지붕 사이로 고만고만한 낮은 집들의 풍경이 정겹다. 도시를 데우는 따뜻한 노을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 속에 도시가 아스라이 잠겨 있다. 트라브존에서 숲길을 따라 수멜라 수도원으로 오른다. 터키 사람들에게 수멜라 수도원은 낯선 곳이 아니다. 우리가 안 가봤어도 불국사의 이름을 알고 있듯이 터키에서는 누립?수멜라 수도원을 안다.

수도원은 트라브존에서 남쪽으로 46㎞ 정도 떨어진 마츠카 지역에 있다. 이 지역의 알튼데레 계곡으로 올라가면 한쪽 급사면에 아슬아슬하게 수도원이 서 있다. 정확한 역사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385년 그리스 출신의 수도사 형제가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받아 지었다고 전해진다. 해발 1200m 위에 암벽을 깎아 만든 수도원 안에는 세월을 초월한 고요와 적막함이 흐르고 있다. 그 후 몇 차례 재건축을 거쳐 13세기에 완성됐다. 이미 800년 전이다.

바위를 깎아 만든 본당 수도원은 5층 구조다. 그 안에는 72개의 방이 있는데, 한때 800여명의 수도사들이 지내던 곳이다. 13세기에는 수도사들을 교육시키는 신학교로도 운영됐는데, 빵 굽는 터와 목욕탕, 교실까지 남아 있다. 하지만 가장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교회당 전체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다.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중 프레스코 성화가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인정받는다.

이 깊고 깊은 산 속의 절벽 수도원에 남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하며 다시 산길을 내려왔다.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겨울철이어서인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치즈와 버터를 녹여 만든 전통음식 ‘후이마’에 빵을 찍어 먹고, 진하디 진한 터키식 커피를 마시며 수도원의 여운을 달랬다.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지나는 마츠카 마을에도 잠시 들러 오후의 한때를 보냈다. 작은 마을이라 특별하게 내세울 관광지는 없다. 하지만 미소가 인자한 할아버지와 인심 좋은 동네 사람들을 만나고 눈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 훈훈해지는 동네다.

기독교·이슬람 어우러진 비잔틴 도시

트라브존 시내에도 볼거리가 많다. 대표 명소는 아야소피아 성당이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소피아와 이름이 같지만 자태는 훨씬 아담하다. 아폴로 신전의 잔해 위에 기독교 성당이 세워졌고, 오스만튀르크 시절에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다가 박물관으로 지정됐다. 성당 안에는 8~9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최후의 만찬’ 그림도 찾아볼 수 있다.

트라브존 시내의 중심은 메이단 공원이다. 트라브존 여행이 시작되는 이 공원 주변에는 여행자 숙소와 카페, 레스토랑이 모여 있다. 인근의 도시로 나가는 버스와 택시, 돌무쉬(마을버스 역할을 하는 봉고차)도 여기서 출발한다. 트라브존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 거리인 우준 소칵도 이 공원 옆에서 이어진다. 이스탄불의 최대 쇼핑가인 이스티크랄 거리를 축소해 놓은 모양새다. 메이단 공원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해변에 다다른다. 여름에는 흑해를 투어하는 유람선이 이곳 선착장에서 출발하고 주변에는 해산물 레스토랑도 여럿 있다.

보즈테페 언덕에서 바라본 도시의 전경

트라브존에서 가장 유명한 겨울 생선 함시도 이곳에서 먹을 수 있다. 멸치를 닮은, 하지만 멸치보다 큰 함시는 통째로 구워 먹는데 그 맛이 참 담백하면서도 고소하다. 터키 전체에서 나는 함시의 20%가 이곳 트라브존에서 잡힌다. 어른의 검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함시를 별다른 양념 없이 바삭하게 구워 먹는다.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기에는 보즈테페 언덕이 최고의 장소다. 올라가는 동안 오르타 히사르 성채의 당당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로마 시대에 만들어지고 비잔틴 시대에 확장한 중세의 성벽이다. 보즈테페 언덕 위에 오르면 붉은 지붕의 집들 너머로 짙푸른 흑해가 한눈에 내다보인다. 그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서 쉽게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알기나 한다는 듯이 언덕 위에는 야외 카페가 있다. 트라브존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와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그리고 한 무리의 젊은 친구들이 모두 어울려 앉아 차를 마시거나 시샤를 피우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안개가 낀 듯 희뿌연 연기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 안개 속에서 도시는 더욱 신비롭게 서 있다.

여행 정보

터키항공(turkishairlines.com)을 이용해 이스탄불을 거쳐 트라브존까지 갈 수 있다. 인천~이스탄불 구간은 매일 운항하고 있으며, 이스탄불에서 트라브존 비행 노선은 하루 여러 차례 운항한다. 이스탄불까지 걸리는 시간은 10시간, 이스탄불에서 트라브존은 1시간 반가량 걸린다. (02)3789-7054

트라브존의 맛집으로 잘알려진 파로즈 쿄프테(farozkofte.com.tr)는 흑해의 바닷가 부근에 있다. 20마리는 거뜬히 넘어보이는 함시가 접시 절반에 가득 담겨 나온다. 함께 나오는 밥은 버터에 볶은 듯 고소하다. 함시 1인분에 20~25리라.

트라브존(터키)=이동미 여행작가 ssummers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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