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조상님 잠깐 뵙고…설 연휴 쭈욱~ 여행 간다
기차·버스 대신 '자차족' 귀성객 늘어도
전국 여행지 교통 분산…교통체증은 되레 줄어
노년층 역귀성 후 여행도…리조트·호텔도 'D턴족' 잡기
[ 김태호 / 윤희은 기자 ]
정다운 씨(23)는 이번 설 연휴에 서울에서 출발해 고향인 대전을 거쳐 가족과 함께 강원 속초로 여행을 갈 계획이다. 가족과 함께 설악산 등산을 한 뒤 평소 좋아하는 해산물도 마음껏 먹기 위해서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2일 혼자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을 짰다. 그는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하면서 추석과 설에 여행을 다니는데 가족들 모두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명절 연휴에 고향과 여행지를 거쳐 귀경하는 이른바 ‘D턴’이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 잡고 있다. 고향으로 내려간 뒤 다른 여행지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알파벳 D와 닮아 ‘D턴’이라 부른다.
정소영 한국도로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추석 고속도로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 여행지를 경유하는 귀경 형태가 전체의 39%를 차지했다”며 “올해 설 연휴에도 이 같은 경향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D턴족(族)이 늘면서 △대중교통 대신 승용차로 귀성길에 오르는 자차족 증가 △노년층의 역귀성 확산 △차례 간소화 등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고향 들렀다 여행지로” 자차족 는다
올해 설 연휴에 승용차로 고향을 찾는 자차족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집-고향-여행지-집’ 순으로 연휴 기간의 이동계획을 짠 D턴족이 많아서다. 지난 추석 연휴 때 교통량 증가에도 전국적으로 교통 정체가 다소 완화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기에는 고향에서 바로 귀성하지 않고 여행지를 거치는 새로운 명절 풍속도가 영향을 미쳤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당일 고속도로 교통량은 516만여대로 역대 최대였다. 그런데도 교통정체는 상대적으로 줄었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 가장 정체가 심했던 순간의 고속도로 정체 규모는 전국 고속도로 4112㎞ 중 140㎞였다. 2013년 추석(590㎞)보다 450㎞나 줄어든 수치다. 여기에 이번 설날엔 부산에서 서울까지 귀경시간이 6시간30분으로 작년에 비해 약 15분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서울에 사는 장현석 씨(45)는 이런 이유로 이번 설엔 열차표를 예약하지 않았다. 고향인 광주광역시까지 승용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연휴에 계획한 가족여행도 승용차를 선택한 이유다.
장씨 가족 4명은 17일 저녁 광주에 내려가 설 당일인 19일 오전 고향을 출발, 강원 영월로 떠난다. 그는 “동생 가족도 여행을 간다고 해 어른들께 세배만 드리고 출발할 예정”이라며 “영월에서 천문대 등을 둘러본 다음 21일께 서울로 돌아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토부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집을 떠나 4박5일 연휴를 즐기겠다’는 의견이 12.4%로 지난해 추석(5.3%)보다 7.1%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층도 역귀성 뒤 여행지로
역귀성해 자녀들을 만나 설을 보내고 여행지를 거쳐 내려가는 D턴도 늘고 있다. 노년층이 이런 코스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경남 창원에 살고 있는 김철규 씨(61) 부부는 설 연휴에 결혼한 자녀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올라온다. 지난해 추석 때까지만 해도 두 자녀가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올해는 김씨 부부가 18일 서울로 올라가 자식들을 만나고 남이섬을 거쳐 경남 남해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여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바닷가에 인접한 리조트를 예약한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작년보다 20% 정도 늘었다”며 “서울에 있는 자식들을 만나고 내려오는 길에 쉬었다 가는 분도 많다”도 전했다.
명절 연휴 국내외 여행이 늘면서 차례와 같은 명절 전통은 점점 옅어지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형제들이 번갈아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이번 연휴에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인 노모씨(34)는 “지난해 추석 때는 형 가족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지만 차례는 서로 명절 때마다 번갈아 가면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명절 때 ‘어디로 여행을 갈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개인주의·성과주의·현실주의적으로 생활양식이 변했기 때문”이라며 “여행지에서 휴식을 취하며 명절을 보내는 게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레저업계 “D턴족·호캉스족 잡아라”
D턴족이 늘면서 전국 각지의 리조트와 호텔 등 숙박 업계는 D턴족을 잡기 위해 마케팅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강원 평창 휘닉스파크는 28일까지 최대 70% 할인된 가격에 호텔 1박과 리프트 주간권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았다. 리조트에서 연휴를 보내는 고객 편의를 위해 설날 당일엔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합동 차례를 무료로 진행할 계획이다. 경주와 양평 등에 지점을 둔 한화리조트는 15일부터 17일까지 숙박과 조식 등이 포함된 패키지 상품을 정상가 대비 67%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16, 17일까지 휴가를 내 더 긴 설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겨냥했다.
서울 시내 호텔들은 고향에서 명절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호캉스(호텔+바캉스)족’ 잡기에 나섰다. 서울 르네상스호텔 관계자는 “숙박·조식·사우나·수영장·영화 티켓 등을 17만원(봉사료 별도)에 제공하는 설 패키지 상품 판매가 작년보다 2배 정도 늘었다”며 “특히 20일 이후 예약이 많아 귀향했다가 서울로 올라온 뒤 호텔에서 여유를 즐기려는 고객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호/윤희은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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