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포퓰리즘에 휘청거리는 메르코수르
'원자재 파티' 끝나자 年 8% 성장이 0%대로
성장없는 복지에 세수 바닥…연금개혁 칼 빼
[ 장진모 / 유창재 기자 ]
지난달 29일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 중앙시장 앞. 수백명의 대학생이 ‘3.5 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시 당국이 버스 기본요금을 3헤알(약 1200원)에서 3.5헤알(약 1400원)로 인상하자 항의시위에 나선 것이다. 대학생 페드로 씨(22)는 “가뜩이나 물가가 올라 어려운데 정부가 공공요금을 올려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기고 있다”고 성토했다. 물가상승률이 40%를 웃도는 아르헨티나에서도 작년 말부터 폭동 수준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오일 머니로 ‘복지 천국’을 꿈꿔왔던 베네수엘라 정부는 생필품 사재기를 막기 위해 군인들을 동원하고 있다.
○브라질의 뒤늦은 반성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의 3대 주요 좌파 정부가 성난 민심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콜롬비아 싱크탱크 페데사로(사회정책연구소)의 호세 빈센테 로메로 거시경제분석국장은 “라틴아메리카 경제에서 멕시코와 콜롬비아의 마약갱단과 게릴라보다 더 무서운 게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경제가 수렁에 빠지면서 좌파정부들조차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 1월 초 2기 임기 시작 후 가장 먼저 연금제도에 칼을 빼 들었다. 브라질은 ‘연금천국’으로 불린다. 연금 수령자가 사망하면 그 배우자가 죽을 때까지 연금을 고스란히 받는다. 재혼을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혜택을 노리고 ‘슈거 대디(sugar daddy·돈 많은 중년 남자)’와 결혼하려는 젊은 여성들 때문에 재정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호세프 대통령은 ‘슈거 대디’를 퇴출하기 위해 배우자는 연금의 50%만 받고, 44세 이하면 배우자 사망 후 3년치만 받게 했다. 실업급여도 대폭 삭감하고 유류세 인상 등을 통해 재정을 확충키로 했다. 복지 최우선 정책을 펴온 좌파정부지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긴축이 불가피하다는 냉정한 판단에 따른 것이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말 상파울루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호세프 정부가 구조조정을 포기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꼬집었다.
○위기의 주범은 성장 없는 복지
원자재 호황이 절정이던 2010~2011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률은 8~9%를 웃돌았다. 하지만 불과 3~4년 새 제로(0)성장 또는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브라질은 지 ??14년 만에 무역적자로 돌아섰다. 원자재값 급락 충격뿐 아니라 대(對)아르헨티나 수출이 급감한 탓이었다.
브라질 재계에선 아르헨티나의 지나친 보호무역주의가 메르코수르의 기능을 마비시킨다고 비판한다. 일각에선 메르코수르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메르코수르의 위기는 외견상 원자재 시장 침체가 원인이다. 하지만 똑같이 자원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칠레 등 ‘태평양 동맹(Pacific Alliance)’ 국가들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콜롬비아와 페루는 원자재 수출 비중이 70%가 넘지만 지난 4~5년간 4~6%의 견고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브라질 제툴리우바르가스대학(FGV)의 세르지오 골드바움 교수는 “브라질이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은 원자재 호황에 취한 나머지 경제성장과 재정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각종 포퓰리즘과 반(反)시장적 경제정책을 남발해 대외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의 지난해 재정적자는 12년간 최대 규모인 1285억달러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6.7%에 달한다.
‘태평양 동맹’ 국가들도 원자재 충격에서 자유롭진 않다. 원유와 석탄의 수출 비중이 60%에 달하는 콜롬비아는 연초 페소화 가치가 급락했다. 작년 상반기까지 달러당 1800~2000페소를 유지해오던 환율이 올 들어 달러당 2200~2400페소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제조업이 버텨주고 있다.
후안 파블로 코르도바 콜롬비아증권거래소 사장은 “유가 하락에 의한 경상수지 악화는 환율 하락에 따른 제조업 등의 수출증대 효과로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고정환율제인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에 ?이 같은 ‘자동 버퍼’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 게다가 과도한 자국 내 산업 보호 정책과 높은 관세 등으로 제조업 자체의 경쟁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보고타·상파울루=장진모 특파원/유창재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