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규제 없애라
과잉입법→과잉처벌 악순환
행정규제 처벌이 형법 처벌보다 많아
"과태료면 충분한데 징역·벌금 비일비재"
[ 이태명 기자 ] 국유지나 타인 소유 산에서 밤이나 도토리 등을 따는 건 위법이다. 산림자원법(73조) 규정이다. 만약 밤, 도토리 등을 따면 어떤 처벌을 받을까. 과징금이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규정을 어기면 ‘7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사소한 법 위반으로 전과자가 될 수 있다.
김일중 한국법경제학회 회장(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이 ‘규제범죄에 대한 과잉범죄화’ 보고서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한국 사회에서 규제 위반에 대해 단순 행정제재가 아닌 징역·벌금형 등 과도한 형벌이 가해지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다. 과도한 처벌 규정을 담은 규제로 인해 전과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란 점이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등장한 법·규제의 상당수가 징역과 벌금 등 처벌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과도한 행정규제 위반 처벌
김 교수는 보고서에서 1996~2010년 사이 형법을 적용받는 범죄(형법범죄)와 행정규제를 위반한 범죄(행정규제 범죄)를 심층 분석했다. 그 결과 15년 새 전과자 수는 1.5배 늘어 1100여만명(누계 기준)에 육박했다. 특히 1982년 이후 행정규제 범죄로 처벌받은 경우가 형법범죄 처벌 건수를 추월했다. 매년 늘어나는 전과자의 70%가량이 행정규제 위반으로 추정됐다. 행정규제 위반에 대한 과잉처벌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김 교수는 2009년 법무부 자료(행정규제 벌칙조항 정비 방안)를 분석한 결과 행정규제 중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택적으로 부과하는 규제는 844건(2009년 기준)이었다. 이 가운데 비슷한 유형의 형법 조항보다 처벌 수위가 높은 규제는 100여개였다. 예를 들어 특정 행위에 대해 형법은 ‘징역 1년 미만, 벌금 1000만원’으로 규정했는데, 비슷한 행위에 대해 행정규제는 더 과중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또 벌금형을 징역형으로 환산해 처벌의 경중을 따져도 행정규제 위반이 형법 위반보다 처벌이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국민권익위원회 등에서 정한 법정형 권고 기준은 ‘징역 1년=벌금 1000만원’인 반면, 행정규제 위반은 ‘징역 1년=벌금 500만원’으로 처벌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과자 양산하는 과잉 규제
행정규제 위반에 대한 처벌이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 김 교수는 ‘과잉 입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징금 등 행정제재로도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도 법 규정에 징역·벌금 등의 벌칙조항을 담은 규제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정거래법이 대표적 사례다. 이 법은 상호출자제한집단 소속 기업이 주식 소유 현황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 등 각종 법 위반행위에 징역형과 벌금형을 부과한다. 김 교수는 “과징금으로도 충분히 법 제정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친 규제”라며 “(정부 국회가) 엄하게 처벌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지난 2년간 쏟아져나온 상당수 경제민주화 법안에도 해당된다. 2013년에 개정된 하도급법은 ‘부당한 하도급대급 지급행위’에 대해 과태료가 아닌 벌금형을 부과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같은 해 개정된 자본시장법도 ‘기업이 사업보고서 등에 임원 개별보수를 잘못 기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처벌을 강화했다.
김 교수는 “법률 외에 시행령, 고시, 규칙, 조례, 행정명령 등 과도한 벌칙을 명시한 조항이 너무 많다”며 “과도한 형벌을 부과하는 현상은 ‘규제 천국’ ‘과잉 범죄화’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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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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