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공약 가계부 사실상 파탄
한국인의 양심 시험하는 세금논쟁
점점 그리스 닮아가는 법인증세론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조원동 전 경제수석은 거위 털 뽑는 이야기로 여론의 눈총을 받았다.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털을 뽑아야 한다는 서양 속담을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듣는 거위들은 기분이 나빴다는 거다. 그렇게 살벌해졌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세금 걷는 것을 작은 생선을 굽는 데 비유했다. 화덕에서 작은 생선을 구울 때 살점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거위 털 뽑기와 비교하면 임 청장의 생선 굽기 발언이 잔혹성(?)은 더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임 청장은 지탄을 받지 않았다. 그는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좀 어려운 한자를 썼다.
마치 납세 대중은 세금은 절대로 더 낼 수 없다고 결심하고 있는 것으로까지 비친다. 물론 13월의 세금 폭탄론은 실소를 자아내는 해프닝이었다. 예기치 않게 사라진 13월의 보너스가 섭섭해서, 폭탄이라며 웃어보았던 일을 언론들이 정색을 하고 진짜 문제로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매월 충분히(?) 많이 떼었다가 소위 13월에 200%씩 돌려주면 국민들이 더 좋아할 것이라는 자학적 아 絹助齋沮?나왔다. 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사태는 소득공제냐 세액공제냐며 기획재정부가 약간의 말장난을 하면서 이미 예고되었던 얄팍한 셈법의 말로다. 기재부는 지금도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공약 가계부는 여전히 차대변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기술자’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공약 가계부는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135조원의 복지 대차대조표 말이다. 벌써 잊었을까. 세입확충으로 50조7000억원, 세출절감으로 84조1000억원을 조달해 복지에 투입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모든 항목들이 이미 어긋났다.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해 세수를 늘리기(18조원)는커녕 이제는 소급해서 토해낼 지경이다. 지하경제 양성화(27조원)는 자영업자 지원론이 나오면서 역시 종을 쳤다. 생선을 굽기는 했는데 이미 뼈만 남았다는 상황이다. 조세재정연구원 자료로는 세금 내는 데 들어간 납세비용만도 작년에 무려 10조원이다. 당국이 거두는 데 쓴 돈은 얼마일까. 박 대통령에게 지하경제에서 27조원이나 더 걷을 수 있다고 보고한 얼빠진 ‘소위 전문가’는 누구였나.
소득포착률은 여전히 50%를 밑돌고 있다. 그래서 월급쟁이들은 앞으로도 봉일 수밖에 없다. ‘기왕에 내는 사람에게서 더 걷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세수 독촉에 시달리는 세무 공무원들의 오랜 원칙이요 비밀이다. 총세수 늘리기도 물 건너갔다. 경기 침체로 줄어든 세수만도 20조원이다. 세출 절감 84조원도 이미 사라졌다.
한국인들은 자기책임 의지가 얼마나 있다고 봐야 할까. 혹 그리스나 스페인 비슷하지는 않을까. 갤럽 여론조사는 ‘성장이 복지보다 중요하다’ 58%, ‘증세보다는 복지를 줄여야 한다’ 48%로 나타났다. 아직 건강하다. 그러나 부자 증세, 법인세 증세를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여당 경제통이라는 나성린 의원조차 만질 때마다 자꾸 커지는 법인세를 또 만진다. 한국 법인세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거의 톱 클래스다.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미국 2.5%, 영국 2.7%, 프랑스 2.5%보다 1%포인트 이상 높다. 일본이 우리와 같은 3.7%다. 독일은 1.7%로 한국 대비 절반 이하다. 하물며 지금 법인세를 올리자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경쟁 상대인 싱가포르(아마도 그쪽 사람들이 웃을지 모르겠다) 등에 비기면 지금도 많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를 거론하는 것은 비열하다. 기업은 비명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법인은 양심을 가진 존재가 아니므로 감옥에 집어넣을 수도 없다. 투표권도 없다. 바로 그 때문에 모든 부담을 법인에 떠넘기자는 주장이 쉽게 나오는 것이다. 책임(부담) 없는 복지는 한국인의 비열성을 드러낼 뿐이다. 점점 그리스를 닮아가는 맨얼굴이다. 거위 털에조차 버럭 화를 내는 시늉을 하면서 정작 거위의 배를 가르자고 나서고 있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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