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재고가 사상 최대라고 한다. 소비는 부진한데 공급이 계속 늘어난 탓이다. 한국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우유 재고량은 작년 말 23만2572t으로 전년 말(9만2677t)의 2.5배에 달했다. 재고를 보관할 창고마저 꽉 차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국내 우유값은 요지부동이다.
우유 공급과잉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름에 덜 덥고 겨울에 덜 추운 날씨 덕에 세계적으로 우유 생산이 늘어 국제가격이 1년 새 50%나 폭락했다. 국내외 가격차가 두 배 이상 벌어지면서 수입도 늘었다. 반면 수요 면에선 우유 소비의 60%를 차지하는 12세 이하 유·아동 인구가 해마다 3~4%씩 줄어들고 있다. 유일한 돌파구라던 중국조차 우유가 남아 밭에 쏟아버리는 지경이라니 별로 기대할 게 없다.
정부가 아예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게끔 만들어놓은 데 그 원인이 있다. 2012년 원유(原乳) 가격을 낙농가의 생산비에 연동해 결정토록 함으로써 가격을 통한 수급조절이 불가능해졌다. 공급과잉이 와도 각 농가는 생산량을 줄일 이유가 없다. 게다가 농림축산식품부는 2011년 구제역에 따른 수급안정을 이유로 농가의 우유 생산쿼터를 늘리는 등 우유 증산대책까지 폈다. 그 결과 젖소 사육 두수가 2년 반 새 2만5000여마리나 늘어 공급과잉을 부채질한 것이다.
한국 농업은 우유든 쌀이든 아무리 남아돌아도 생산량을 줄이기 힘든 기이한 구조가 돼버렸다. 수십년간 농업을 정치적 보호대상으로만 여겨 가격을 관리해온 결과다. 시장기능의 복원 없이는 농업의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