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귀족들만의 전유물이던 한증을 아픈 백성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온열치료의 문을 백성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국가운영 한증소는 목욕실과 함께 조선시대 사회복지시설격인 동·서 활인서(活人署)에 두었다. 활인서는 도성 내 빈민 구호관서다. 오늘날 동부는 서울 돈암동(돈암장 터)에, 서부는 아현동(아현초등학교 터)에 있었다. 혜민서의 파견의원과 월급 스님 한증승(寒症僧), 무세(巫稅) 내는 무녀(巫女)가 운영하는 비영리 의료기관이다 보니 의사의 호불호에 따라 출입 여부가 결정됐다. 감기, 기관지 천식, 심하지 않은 고혈압증, 비만증, 신경통 등이면 죽과 소금을 받을 자격을 줬다.
한증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오랜 토법(土法) 치료의 하나다. 좋은 땅을 골라 구덩이를 판다. 펑퍼짐한 돌을 쌓아 돔구조를 만들고 그 사이를 황토로 비벼 마름질한다. 서너 시간 소나무를 태워 뜨거워지면 휘휘 물을 뿌린다. 5분 정도 거적을 둘러 분비물을 쏟아내고 땅의 생명 기억을 내 몸에 집어넣는 것이 한증이다.
한증의 기본은 좋은 땅을 찾는 일에서 시작된다. 땅은 흙이다. 좋은 땅이란 생명을 키우는 흙이다. 즉 토지의 기풍이 그 지역의 상태를 표현해 생명의 파동을 만든다. 생(生)의 파동은 리듬을 만들어 생명을 건강하게 이끈다. 대표적인 표상이 식물과 동물이다. 땅이 아프면 식물이 아프고 식물이 아프면 동물이 아픈 표리일체의 기운을 땅의 생기(生氣)라 이름했다. 그 생기 위에 장자(藏者)는 올라탔고, 생자(生者)는 움집을 파 내려갔다.
식물과 외계는 생물학적 경계선이 없이 직접적이다. 뿌리는 대지와 소통하고 잎사귀는 하늘과 맞닿아 있다. 반면 사람의 몸은 오장을 싸서 우주와 완벽히 차단되는 체벽계(體壁界) 기관으로 자연과의 교류가 간접적이다. 이러한 발생학적 한계는 혈거(穴居)를 통해 ‘노자 도덕경’에서 자신의 뿌리로 돌아간다는 복귀(復歸)가 가능해진다. 뿌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제 명(命)을 찾아간다는 복명(復命)이다.
혈(穴)은 생명 기운이 꿈틀대는 구덩이다. 소도 아프면 흙에 몸을 비벼대고, 꿩도 둥지를 틀 때 오목히 땅을 판다. 땅의 구덩이를 이용한 한증막 역시 그 이치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은 자연의 거대한 너울 안에서 육체 리듬의 공진을 한다. 그 중심에 모태의 울림인 자연, 즉 땅의 마음이 있다. 위민(爲民)을 위한 세종의 마음이 생명 사랑이듯이 결국 혈(穴)은 치유의 본향이다.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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