强달러의 저주…美기업 '실적 쇼크'

입력 2015-01-28 21:28
수정 2015-01-29 03:45
해외시장서 가격경쟁력 약화…환차손까지 고스란히 떠안아
P&G, 4분기 순익 31% 급감…캐터필러·듀폰 등도 매출 감소
기업들이 고용·투자 줄이면 美 회복세에 찬물 끼얹을 수도


[ 김은정 기자 ] 치솟는 달러화 가치가 미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강달러 여파로 작년 4분기 미국 주요 기업 실적이 줄줄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큰 미국 기업이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잃은 데다 해외 매출을 미국으로 송금할 때 막대한 환차손까지 입은 탓이다. 실적이 악화된 기업들이 고용과 투자를 줄일 경우 미국 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 대기업 실적 줄줄이 악화

27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와 캐터필러 등 미국 주요 기업들은 시장의 예상보다 부진한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이 여파로 뉴욕 증시는 1% 넘게 급락했다. 다우지수와 S&P500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각각 1.65%와 1.34% 떨어졌다.

MS의 작년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한 264억7000만달러(약 28조6880억원)로 집계됐다. 하지만 MS의 매출이 개선됐다기보다 작년 4월 인수한 노키아의 휴대폰 단말?사업 덕분에 덩치가 커진 것이다.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한 58억6000만달러에 그쳤다. MS는 “매출의 4분의 3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며 “강달러 때문에 순이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MS 외에도 IBM과 오라클 등 다수의 정보기술(IT) 기업 매출의 60%가량이 미국 밖에서 나오기 때문에 다른 산업보다 환율변동성에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세계 최대 중장비 기업 캐터필러도 이날 실망스러운 실적을 발표했다. 캐터필러의 작년 4분기 매출은 142억4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고, 순이익은 7억5700만달러로 25% 급감했다.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앤드갬블(P&G)은 작년 4분기 매출이 4.4%, 순이익은 31% 줄었다. 해외 시장에 매출의 3분의 2를 의존하고 있는 P&G는 “강달러에 따른 환차손으로 올해 순이익은 14억달러 더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P&G 역사상 가장 심각한 ‘환율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P&G 주가는 ‘실적 쇼크’로 이날 3.5% 급락했다. 제약업체 화이자와 화학업체 듀폰 등도 강달러 등을 이유로 시장의 기대를 밑도는 실적을 내놨다.

시장조사업체 샌퍼드 번스타인의 스티븐 위노커 연구원은 “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10%에 육박한다면 환율 영향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대부분의 기업처럼 한 자릿수 초중반인 상황에선 환율 위험이 큰 악재가 된다”고 진단했다.

○“기업들 투자·고용 줄일 수도”

올해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미 달러화 가치는 2003년 9월 이후 11년 만에 최고 수준막?치솟은 상태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년 전만 해도 80을 넘나들었지만 최근에는 95 안팎까지 올랐다. 달러화 가치가 20% 가까이 뛴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일본 등 다른 주요 국가들이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시행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정하고 있어 달러화 강세 속도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 바클레이즈 등 IB들은 “달러화 상승세가 단기간에 진정되긴 어렵다”며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 전망을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 진출한 미국 기업은 대부분 현지 통화로 매출을 올린다. 번 돈을 미국으로 보낼 때는 달러화로 환산해야 한다. 이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매출과 순이익이 줄게 된다. 또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해 해외 시장에 수출하는 기업은 비싼 달러화로 비용을 치르고 상대적으로 싼 현지 통화로 상품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부담이 커진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기업들이 작년 4분기에만 120억달러의 환차손을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실적이 악화되면 기업들이 고용과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P&G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달러화 강세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려면 감원과 마케팅 예산 삭감 등 비용 절감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더그 오버헬먼 캐터필러 최고경영자(CEO)도 대대적인 긴축 경영을 선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멈추지 않는 달러화 강세가 더 많은 기업의 실적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투자자들의 불안을 확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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