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 과속페달, 여야대표 함께 밟았다

입력 2015-01-26 21:38
수정 2015-01-27 04:32
총선·대선 정국 국회 속기록 다시 보니

황우여 "소득 상위 30% 포함 영유아 교육 국가책임"
손학규 "무상보육, 시대적 흐름…누구도 대세 거역 못해"


[ 고은이 / 김주완 기자 ]
“무상보육은 시대적 흐름으로 (이런) 대세를 누구도 거역하지 못한다.”(2011년 3월 손학규 민주당 대표)

“소득 상위 30%를 포함해 (전 계층의) 영유아 교육·보육을 국가 책임하에 둬야 한다.”(2011년 8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

여야는 최근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아동 폭행 사태를 낳은 전면적 무상보육의 과속 페달을 이렇게 밟아댔다. 당시 손학규 대표는 국회 간담회에서, 황우여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무상보육 카드를 꺼내 들었다. 황 원내대표는 현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맡고 있다.

당시 민주당은 2011년 초에 무상보육을 포함한 무상복지를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불을 댕겼다. 이후 정치권에선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의 쟁점을 두고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2011년 초만 해도 무상복지에 반대했다.

그해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하자 여당에서도 무상복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국회 속기록, 다수의 정부와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불거진 정부 재정건전성 문제와 연말정산 논란은 이미 예정돼 있던 일이었다.

무상보육으로 대표되는 무상복지 정책이 재정 효율성이나 지속 가능성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정치권 논의 과정에서 무리하게 도입됐기 때문이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무상보육은 (당시에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쉽지 않다고 판단해 반대했지만 정치권에서 선거(2012년 총선과 대선)를 앞두고 전 계층에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정해버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연말정산 논란 같은)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재원, 재원 얘기만 하면 됩니까”…與野, 선거용 무상보육 '퍼주기 경쟁'

“100% 무상보육 안하면 국감 못한다” 호통
정부의 ‘단계적·선별적 무상보육’ 질타당해

물꼬가 터지자 여야 의원들은 가릴 것 없이 무상보육 가속페달을 밟았다. 2011년 11월~12월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정부가 소득하위 70%까지 보육료를 지원하는 안을 내놨는데 전 가정에 지급해야 한다”(전현희 의원) “학부모 부담이 만만치가 않은 데 보육에서 보편적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주승용 의원)고 정부를 몰아붙였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맞장구를 쳤다. “보육료 지원을 모든 계층으로 확대하는 데 이견이 없다”(안홍준 정책위 부의장) “0~5세까지 무상보육을 국가가 전부 책임질 수 있도록 내년 예산에 반드시 반영하겠다”(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고 거들었다. 단계적, 선별적으로 실시될 예정이었던 보육료 지원 정책은 2012년 총선과 대선 국면을 앞둔 시기, 이렇게 여야 합의에 따라 전면적 무상보육으로 대폭 확대됐다.

2011년 11월1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다음해 4월 총선을 코앞에 두고 ‘무상복지’ 이슈가 한창 달아올랐다. 그 중심에 ‘무상보육’이 있었다. 당시 무상급식 이슈를 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진퇴 여부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자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무상’ 키워드를 꺼내들었다.

“보육은 보편적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제 주장이고 정부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주승용 민주당 의원) “그런데 이게 재원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단계적으로…”(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항시 재원, 재원 얘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떻게든 만들어야지요!”(주 의원)

당초 정부는 만 0~2세와 5세의 경우 단계적으로 무상보육을 실시하되 만 3~4세의 경우 소득 수준에 따라 선별 지원할 계획이었지만 정치권 분위기가 0~5세 전면 무상보육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해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율이 개표요건(33.3%)에 못 미쳐 투표함을 열지도 못하고 시장직을 사퇴했다. 10월 보궐선거에서는 범야당 진영의 박원순 후보가 승리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은 결국 12월 ‘표심’을 고려해 “0~4세 무상보육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정이 부족했던 정부는 난색을 표했다. “방향은 공감하지만 재정 형편을 고려해 연차적으로 확대하겠다”(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재원이 많이 들어가니까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박재완 장관)는 입장을 밝혔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권 공세엔 속수무책이었다. 예결위 여야 간사는 결국 12월30일 “0~2세 보육료 전액을 국가가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회의에선 민주당 간사였던 강기정 의원이 “보육료 지원 사업에 3697억원을 추가 계상한다”고 밝힌 뒤 그대로 처리됐다.

바로잡을 기회가 아예 없던 것도 아니었다. 정부는 2012년 하반기, 전업주부 대상 보육료 지원액을 반일제 기준으로 깎고 양육수당 지원 대상도 소득 70%로 축소하는 보육체계 개편안을 내놨다.

그러나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런 정부 안에 찬성할 국회의원은 없었다. 박근혜·문재인 당시 여야 대통령 후보는 0~5세 무상보육을 핵심공약으로 내건 상태였다. 당시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은 “여야가 합의한 무상보육 수준을 뒤로 돌린다는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김용익 민주당 의원도 국정감사장에서 “100% 무상보육을 할 것인지 (장관이)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이 국감, 못 한다”고 정부를 윽박질렀다. 무상복지를 축소하는 정부 안은 폐기됐다.

하지만 무상보육의 장밋빛 꿈은 채 2년이 가지 않았다. 재정확보 방안에 문제가 생기자 여야는 무상보육을 두고 ‘네 탓’만 하고 있다. 박재완 전 장관은 “정치논리에 의해 도입된 전 계층 무상보육은 유례가 없다”며 “재정 상태를 보고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이/김주완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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