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총선 압승한 시리자 "5년간의 치욕 끝…긴축은 없다"
구제금융 연장 안되면 디폴트…그렉시트 재점화 가능성도
[ 노경목 기자 ]
25일(현지시간) 치러진 그리스 총선에서 승리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는 총선 승리 연설에서 “이제 ‘트로이카’는 과거의 것이 됐다”고 말했다. 트로이카란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을 뜻하는 것으로, 이들이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요구한 긴축정책을 폐기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한 것이다.
○긴축 반발 업고 압승한 시리자
시리자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긴축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 때문이다. 트로이카는 2010년 구제금융을 제공하며 공공 부문과 노동시장의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했다. 그 결과 재정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고 국가경쟁력도 개선됐다. 하지만 그리스 국민들은 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연금 수급액이 평균 40% 감소했고, 민간 부문 임금은 2013년 한 해에만 16% 줄었다.
시리자는 선거기간 긴축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110억유로를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약속했다. 3170억유로(약 381조9818억원)에 달하는 국가부채는 재협상을 통해 3분의 1을 탕감받겠다고 공약했다. 그리스는 현실적으로 트로이카의 도움 없이는 부채를 감축하는 것은 물론, 경기 부양에 투입할 110억유로도 마련하기 어렵다. 올 들어 그리스 국채 10년물의 금리가 연 10% 선까지 올랐다. 민간시장에서 돈을 조달하기엔 이자비용이 너무 커졌다.
○독일 “구조개혁 계속해야”
하지만 EU와 ECB의 정책 결정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독일이 시리자의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그리스 총선 당일 한 방송에 출연해 “공공재정이 장기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면 부채 탕감은 일시적 효과에 그칠 것”이라며 “구조개혁을 계속하는 것이 그리스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부채 감축 요구를 들어줄 경우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다른 구제금융 지원국들의 연쇄 재협상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트로이카에는 부담이다. 11월 총선을 앞둔 스페인에서는 급진좌파정당 포데모스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리스는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EU 정상회의에 앞서 구체적인 요구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치프라스 대표는 총리 취임 후 EU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EU 지도자들을 만나게 된다”며 “그 전에 시리자의 재협상 요구안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로존 탈퇴는 없다지만
그리스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당장 EU가 제공한 구제금융 프로그램 시한이 한 달 뒤인 2월28일이다. 구제금융 시한 연장이 안 되면 오는 3월에 43억유로, 7월과 8월에 65억유로 규모로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 상환에 실패할 수 있다.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진 그리스가 유로화 사용을 포기하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떠날 수 있다는 ‘우발적 그렉시트(Grexit)’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총선 전에 기카스 하르두벨리스 그리스 재무장관이 “그렉시트가 반드시 엄포만은 아니며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시리자의 승리가 예고됐던 만큼 향후 시장 영향은 크지 않다”(미 경제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예상도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이낸설타임스(FT)는 “일단 20억유로의 복지재정을 확보하는 선으로 시리자가 후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