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원의 데스크 시각] 삼성의 백혈병 협상에 거는 기대

입력 2015-01-25 20:40
수정 2015-01-26 03:41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


[ 이익원 기자 ]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사회적 갈등은 언제나 있다. 이해관계자 간 생각이 다를 수 있어서다. ‘법과 원칙’만으로 논란을 잠재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적절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합의점을 찾는다면 사회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원인을 따지지 못하고 허둥지둥 덮는다면 언제든지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연말정산 혼란이 그런 경우다.

정당 정치 역사가 짧은 탓이겠지만 한국은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량과 끈기가 태부족하다. 1998년 출범한 노사정위원회가 대표적 사례다. 외환위기가 터지자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이끌어내기 위한 취지로 발족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때 빚어진 광우병 파동은 진영 논리의 극단적 전형이었다.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도 마찬가지다.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

그런 점에서 삼성전자가 반도체 직업병(백혈병) 논란을 합리적 절차를 통해 해소하겠다고 나선 건 의미있는 결정이었다. 2007년 기흥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던 황유미 사원이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촉발한 이 사건은 복잡한 사회문제로 번져갔다. 이내 활동가들이 모여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을 발족했다. 몇 차례 대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협상은 별다른 진전 없이 겉돌았다. 작업현장에 영향을 미칠 수준의 원인물질이 확인되지 않았던 탓이다.

돌파구를 찾게 된 게 작년 4월이다. 심상정 의원(정의당)이 기자회견을 열고 제3중재기구 구성을 제의했고 삼성이 이를 수용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지 못한 점을 공식 사과했다. 가족대책위도 회사 측 진정성을 인정했다.

인사·법무팀이 아닌 홍보팀이 협상을 주도하게 된 것도 변화였다. 소통을 강화해 사회적 갈등 해결의 모범사례를 만들려는 취지에서였다. 협상과정을 상세히 공개해 공론화하려는 노력도 뒤따랐다. 심지어 이해관계자인 반올림을 조정위원회가 주도하는 협상장에 나오게 하려고 백도명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를 조정위원에 포함시켰다. 백 교수는 2009년 반도체 라인에서 벤젠이 검출됐다는 컨설팅 결과를 발표해 삼성을 곤경에 빠트린 적이 있는데도 말이다.

사회벅 합의 모델 전형돼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요소(진정성·배려, 소통· 공론화)를 웬만큼 갖춘 만큼 이제는 고통받는 근로자의 아픔을 달래면서 기업의 지속성장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의 합리적인 보상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물론 접점 찾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당장 반올림은 ‘배제없는 보상’ 원칙을 주장하며 공장에서 3개월만 일했으면 20년 내 발병한 모든 암, 전암성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등을 모두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암성질환은 대장용종이나 위궤양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근로자가 잠재 보상 대상이 될 수 있다.

자칫 공적 보험 성격인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근간을 흔들게 된다. 다른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조정위원회가 다양한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해 의학적 과학적 근거가 적용된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조속한 타결로 바닥을 드러낸 사회적 합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익원 산업부장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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