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테러 당한 '샤를리 에브도'…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입력 2015-01-23 18:14
터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은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한다.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완공한 후 360년부터 1453년까지 오랜 기간 기독교 성당이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 하에서는(1453년~1931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고 1945년부터 미술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성 소피아 성당에서는 아름답게 손 잡고 있다. 수없이 많은 민족과 언어, 문화와 삶이 지구촌에는 공존한다. 하지만 공존은 수시로 충돌과 마찰한다. 경제·문화·종교적으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충돌은 인류의 역사에서 빠진 적이 없다. 지난 1월7일 이슬람 무장단체가 이슬람 풍자 만평을 낸 프랑스 시사잡지 <샤를리 에브도>를 테러해 12명이 사망했다. 언론을 대상으로 한 테러라는 점에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수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수위가 높은 타종교·문화 만평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면서 표현의 자유 논란이 거세다.

佛 언론사 테러…12명 사망

지난 1월7일 프랑스의 풍자 만평 전문잡지 <샤를리 에브도>에 괴한이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잡지의 편집장과 만화가, 경찰을 포함해 총 12명이 사망했다. 테러범들은 프랑스 국적 이민 2세 청년 3명으로 사이드 쿠아치(34), 셰리프 쿠아치(32) 형제와 하미드 무라드(18)이다. 이들은 샤를리 잡지에 실린 만평이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테러를 자행했다. 테러리스트들은 모두 알제리계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이지만 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국민이 일으킨 자생적 테러란 점에서 충격이 더 크다.

미국의 무슬림 인구 비율이 0.8%인 반면, 유럽 전체 무슬림 인구 비율은 3~4%로 2000만명을 웃돈다. 특히 프랑스는 인구의 9.6%(600만명)가 무슬림으로 유럽 가운데서도 가장 높다(독일 5%, 영국 4.6%).

문제는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일자리 다툼에서 밀려난 무슬림들의 사회를 향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저소득 계층에 속한 이들은 폭력과 사회 불안을 계속 일으켜 유럽 극우주의자들은 공개적으로 무슬림을 비난하고 잠재적 테러집단으로 간주하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져왔다.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면 표현의 자유는 중시된다. 미국은 수정 헌법 1조에 ‘언론,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법도 제정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한국 역시 헌법 21조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 가치인 것이다. 특히 언론에 표현의 자유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에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

테러로 숨진 샤를리 에브도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는 생전 인터뷰에서 “우리의 일이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 없이 우리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뿐 아니라 프랑스의 유명 정치인, 교황까지 풍자해왔다. 샤를리지는 ‘성역을 지키려는 종교와 권력의 모든 권위주의’를 비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향한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만평은 논란이 되어왔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구 아래 교황이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모습을 그려 가톨릭 신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 로마교황청으로부터 13차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2012년에는 무함마드(이슬람교 예언자)를 나체로 묘사해 이슬람국가 내의 프랑스 공관들이 폐쇄되고 무슬림들이 거센 시위를 일으킨 바 있다.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필리핀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 특히 타인의 종교를 모독하거나 조롱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샤를리 테러에 대해 표현의 자유에 동의하지만 이슬람을 노골적으로 자극한 만평과 풍자는 ‘한계’를 넘어서 종교 갈등을 유발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일각에서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가 특정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함마드와 같은 이슬람 성인을 심각한 수준으로 조롱한 것은 위험한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들은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와 같은 무자비한 폭력은 아니더라도 문화적 차원에서 폭력이 됐을 수 있다”고 말한다. 테러 이후 ‘나는 샤를리다’라고 외치며 샤를리지의 표현 자유를 지지하던 시위에 맞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며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지지하는 운동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슬람 모독을 이유로 로켓포탄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가 언론인을 살해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극단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슬람 내부에 가장 큰 문제가 있고 테러는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표적이 된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교에 수위를 넘는 표현을 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