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민경 기자 ]
'오일 머니(중동 산유국 자금)'에 대한 우려와 '유럽 머니'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금융투자업계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유가 급락에 따른 오일 머니 위축이 국내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불안이 있는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가 가져올 유럽 머니 유입이 증시를 부양할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 ECB, 5000억 이상 QE 유동성 개선
22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ECB는 한국시간으로 이날 저녁 9시45분께 통화정책회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유럽연합(EU) 헌법재판소가 무제한 국채매입 프로그램(OMT)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린 만큼 이번 회의를 통해 ECB가 추가 양적완화(QE)에 나설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최근 스위스 중앙은행이 환율 하한선을 전격 폐지한 것도 ECB 양적완화로 유로화 약세가 심해질 것을 염두에 둔 선제 조치라는 해석이 많다.
전문가들은 ECB가 5000억~5500억 유로(한화 약 690조원) 규모의 국채매입을 골자로 한 추가 양적완화를 발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대준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로존의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과 외환시장 동향을 볼 때 ECB가 더 이상 양적완화를 미룰 순 없을 것"이라며 "이번 회의에서 국채매입 과정과 방법 등이 완벽히 공개되지 않더라도 규모만 예상치에 부합한다면 시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경우 글로벌 유동성이 확대되면서 국내 증시 반전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노아람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 반등을 위해서는 지난해 대규모 매도세를 기록했던 유럽 머니의 유입 여부가 중요하다"며 "따라서 ECB 회의에서의 양적완화 실시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ECB가 5000억 유로 이상의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내놓고 단독으로 위험 부담을 책임질 경우 유동성 공급에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며 "위험 주체가 각국 중앙은행으로 분산되면 매입 규모와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연구원은 작년 11월 드라기 ECB 총재가 양적완화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을 때 유럽주식형 펀드로의 자금 유입이 이루어졌던 걸 주목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최근 글로벌 펀드 흐름을 살펴보면 서유럽계 자금이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순유입을 보이고 있다는 것.
그는 "예상을 뛰어넘는 ECB의 양적완화 규모가 발표된다면 글로벌 유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며 "국내 증시에서의 유럽 머니 유입 여부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제 유가 하락 여전…증시 반등 제한적
국내 증시에서 ECB의 양적완화보다 중요한 것이 국제 유가 향방이라는 지적도 있다.
산유국들이 석유수출로 축적한 외화를 해외투자에 써야 하는데, 최근의 저유가 흐름은 이같은 오일 머니를 위축시킬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중원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ECB 양적완화로 국제유가 하락이 마무리된다면 안전자산 선호가 완화되며 증시 역시 안도랠리를 보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유가 하락이 지속된다면 국내 증시 반등은 제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투자업계에서는 유가 하락의 속도가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당분간 하락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까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전통원유의 생산 감축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천원창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1분기 중 국제 유가는 더 하락할 것으로 본다"며 "미국 타이트오일(셰일) 신규 시추는 줄어들고 있지만 과거 설비를 바탕으로 생산이 여전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산 쿼터를 지키겠다던 OPEC도 그 이상의 원유를 생산 중"이라며 "심지어 쿼터까지 생산을 줄여도 전세계 수급 균형을 맞추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하면 주요 10개 산유국의 해외투자자산(IIP)으로 추정된 전 세계 오일 머니는 2013년 말 기준으로 약 6조 달러를 기록했다. 국가별로는 러시아(1조5000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1조1000억 달러), 아랍에미레이트(6000억 달러) 등의 순으로 규모가 크다.
하지만 최근 유가 하락 여파로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감소하면서 외환보유고 증가율도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주요 10개 산유국의 경상수지는 전년보다 2.7% 줄어든 4700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김 연구원은 "ECB의 양적완화 효과로 유로존 경기회복 기대가 고조되고 이것이 국제 유가의 수요개선으로 연결된다면 유가 급락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도 크게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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