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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의 비즈니스 & 스포츠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미식축구 등 구기 종목에는 필수 용품이 있다. 바로 공이다. 이 가운데 어떤 종목이 가장 시장이 클까. 축구와 야구 경기를 떠올려 보자. 축구는 공이 관중석으로 가도 돌려받는다. 야구는 홈런은 물론이요 파울이 나도 관중이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야구공 시장이 훨씬 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축구공에 비길 바가 못 된다.
야구는 하는 나라 자체가 세계에서 10여개국으로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축구는 안 하는 나라가 없다. 축구공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는 역시 세계 메이저인 아디다스, 나이키, 푸마 등이다. 다만 남미의 경우는 브라질 연고인 페널티라는 업체가 지역 맹주 역할을 하고 있다.
축구공을 포함해 경기용 공은 이제 동물 가죽으로 만들지 않는다. 동물 보호라는 명분도 있지만 워낙 수요가 많기 때문에 폴리우레탄(PU)을 원료로 한 합성피혁 원단으로 제조한다. PU는 부드러운 표면에다 내구성 가공성이 우수해 축구공 대중화 시대를 연 소재다.
PU는 특히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소재다. 아이다스와 나이키 등의 축구공은 대부분 우리나라 업체들이 제조한 PU 원단으로 만든다고 보면 된다. 탄력성 가소성 등이 특히 우수한 것이 한국 PU 원단의 장점이다. (주)덕성 (주)정산인터내셔널 등이 대표적인 PU 원단 업체들이다.
그런데 PU 축구공도 결정적 단점이 있다. 대부분의 합성고무나 수지 제품이 그렇듯이 실크인쇄 외에는 컬러인쇄가 어렵다. 실크인쇄는 20세기를 주도한 인쇄술이긴 하지만 일일이 덫칠하는 방식이어서 표현력이 떨어지고 환경문제도 일으킨다는 단점이 있다.(왼쪽 공) 피바노바(2002) 브라주카(2014) 등 월드컵 공인구들이 몇 가지 색으로만 이뤄진 것은 디자인을 그렇게 해서가 아니라 인쇄기술의 한계였다.
가끔 화려한 색깔의 축구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건 경기용이 아닌 기념구인데 제대로 색깔을 넣기 위해서 PU 대신 PVC에 스티커처럼 붙인 것이다. 그래서 발로 차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딱딱한 공이 되고 말았다.
세계 곳곳에서 필름을 열전사(熱轉寫) 방식으로 공에 입히는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컬러잉크가 PU 원단 표면에서 녹아버리는 바람에 실패했었다. 이런 이유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디지털 인쇄 시대에도 축구공은 몇 가지 컬러의 패턴을 조합한 조잡한 인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공 시장에 일대 변혁이 일어날 것 같다. PU 원단에 어떤 색깔도 자연스럽게 입힐 수 있는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됐다는 소식이다. 열을 전혀 가하지 않는 무열전사(無熱轉寫) 방식이 개발돼 상용화 테스트를 마쳤다고 한다.(오른쪽 공) 원하는 디자인과 패턴 등을 완전한 컬러로 입히게 된 만큼 PU 원단만 용품업체에 제공하는 한계를 벗어나게 됐다.
개발자인 모축연 씨는 “열 없이 전사가 가능한 나노 소재를 개발해 어떤 색깔이든 PU 원단에 입힐 수 있게 됐다”며 사업을 주관하는 (주)경인(대표 최백경)과 함께 다음달 ‘디자인에 의한 표면처리 기술’을 주제로 시연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산업은 최종 용품의 경우 막대한 마케팅비가 필요해 우리나라가 약한 부문이다. 그러나 소재개발 기술은 중국 등이 따라오기에는 우리가 한참 앞서 있다. 소재와 원단, 인쇄기술로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우리가 앞장서 열기를 기대한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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