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혁신기업의 산실 실리콘밸리를 가다 (3) 아이디어보다 실행력이 관건
[ 윤정현 기자 ]
프랑스 파리의 호텔에서 하루 묵으려면 최소 15만원은 내야 한다. 관광객이 많아 호텔 예약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에어비앤비(www.airbnb.com)를 활용하면 파리 중심가 아파트에 있는 방을 하루 5만원에 빌릴 수 있다. 숙소 사진과 가격을 보고 클릭하면 집주인 사진과 함께 위치정보가 뜨고 수십 건의 사용자 평도 살펴볼 수 있다. 에어비앤비는 온라인 숙박 공유 서비스 회사다.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리지드) 졸업생인 조 게비아와 브라이언 체스키가 2007년 “이런 서비스를 통해 사업하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지인들은 “설마 그걸로 돈을 벌겠다는 건 아니지”라고 반문했다. 부모님도 명문 미대를 나온 그들에게 창업보다는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샐러리맨보다 창업에 도전하고 싶었다. 이듬해 체스키는 최고경영자(CEO), 게비아는 최고제품책임자(CPO)를 맡아 에어비앤비를 설립했다. 26세 때다.
현재 에어비앤비엔 세계 3만4000개 도시에 수십만개 숙소가 등록돼 있다. 2009년 겨우 2만달러(약 2100만원)를 유치해 ‘데스밸리(신생기업이 자금난으로 맞닥뜨리는 도산 위기)’를 간신히 넘을 정도로 영세했지만 현재 회사 가치는 25억달러(약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생활고 끝에 얻은 창업 아이디어
게비아는 리지드를 졸업하고 출판사에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틀에 박힌 일상에 싫증이 난 그는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내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창업의 산실’이라는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그러나 꿈은 멀기만 했고 팍팍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비싼 집세를 감당할 길이 없어 미대 동문인 체스키와 함께 살기로 했다. 체스키 역시 창업 꿈을 품은 청년 실업자였다. 그들이 내야 하는 월세는 1150달러였지만 샌프란시스코에 온 지 몇 달 만에 은행 잔액은 1000달러를 밑돌았다.
게비아 CPO는 “200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대규모 산업디자인 행사가 열렸는데 시내에 호텔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얘길 들었다”며 “우리집 거실이라도 내주고 돈을 좀 받아볼까라고 체스키와 농담을 나눈 것이 시작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에어매트 3개를 동원해 거실에 잠자리를 마련한 뒤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하루 만에 이용하겠다는 사람이 3명이 나왔다. 두 친구는 공항 픽업과 아침식사 제공까지 풀서비스를 해주고 1인당 하루 80달러를 받았다. 3명이 5일간 묵으니 한 달치 월세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게비아 CPO는 “시작은 단순한 용돈벌이였지만 그 경험은 따뜻한 추억으로 오래 간직됐다”며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신선한 문화를 접하는 값진 경험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업화 실행 방법이었다.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네이선 블레차크를 공동창업자로 끌어들여 전 세계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줄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다음은 사업자금이 문제였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그는 “하루에 20명의 투자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10명에게 답신을 받은 뒤 이 중 5명과 카페에서 만나는 게 하루 일과가 되다시피 했다”며 “2시간을 미팅하고도 허탕 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매일 좌절을 맛보며 2만달러까지 늘어난 신용카드 빚에 허덕일 즈음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투자회사 와이콤비네이터 설립자인 폴 그레이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실리콘밸리 투자업계를 휘젓고 다니는 20대 청년의 고군분투 얘기가 그레이엄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와이콤비네이터의 첫 투자는 2만달러였지만 그레이엄이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투자엔 물꼬가 텄다.
‘뚝심’ 실행력이 중요하다
창업 후 2년이 될 때까지 에어비앤비 직원 수는 15명이었다. 사무실이랄 것도 없이 작은 아파트에 모여 일했다. 초기엔 게비아 CPO가 직접 뉴욕까지 가 방을 내주고 싶어하는 집을 일일이 방문하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지금은 직원 수가 500여명. 세계 192개국에 숙박시설을 갖고 있다. 현재 숙박 목록에 오른 방은 50만건이 넘는다. 오래된 성과 개인 소유의 섬, 등대와 이글루까지 묵을 곳도 다양하다. 애플 아이폰 발매 전날 밤 점포 앞에 자리를 확보한 텐트가 나오기도 했다. 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자신하면서 예로 든 도시는 서울이다. 그는 “1200만명이 사는 뉴욕에 등록된 숙박지가 2만건이 넘는데 비슷한 인구 규모의 서울엔 아직 2000개뿐”이라며 “세계 어느 곳보다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게비아 CPO는 자신을 롤모델로 삼으려는 창업 꿈나무들에게 얘기했다. “지금 시작하세요. 세상은 일상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줄 서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윤정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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