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15 - 인류, 미래를 찾다
기술은 인간의 물질을 풍요롭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기술 덕에 인류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유통에도 엄청난 변혁이 생겼다. 물질뿐만 아니다. 기술은 인류의 정신도 크게 변화시켰다. 기술로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히 확대됐고, 문화라는 추상적 영역도 놀랄 정도로 넓어졌다.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이 인류의 물질과 정신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술의 진화로 인간이 더 행복해졌을까’라는 질문엔 대답이 엇갈린다. ‘기술과 인간’이 대입 논술의 핵심 키워드이자 면접의 단골메뉴인 이유이기도 하다.
기술이 덜어준 인간의 수고로움
흔히 기계는 육체를 대신하고 기술은 머리(뇌)를 대신한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과 기계는 분리하기 어렵다. 기술이 기계이고, 기계가 기술인 시대다. 그러니 모든 기계나 기술은 인간의 육체와 머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기계는 인간을 고단한 노동에서 해방시킨다. 기계가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고 이동시킨다. 기계 덕에 인류의 생산성은 놀랄 만큼 높아졌다. 산업혁명의 다른 이름은 ‘기계혁명’이고 ‘물질혁명’이다.
머리(뇌)의 부담도 줄었다. 기술이 인간의 복잡한 계산을 대신한다. 다양한 수식을 척척 알아서 해결하고, 기억해야 할 모든 것은 인터넷에 고스란히 담겼다. 암기보다 검색이 키워드인 시대다. 기계가 인간의 육체적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기술이 뇌의 부담을 낮춰주면서 인류의 삶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인간이 기계의 노예 될 수도
‘군자는 사물을 부리지만 소인은 사물에 부림을 당한다(君子役物, 小人役於物).’ ‘순자’ 수신편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어떤 사물에 종속돼 자아를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첨단화되는 기술, 인공지능의 시대인 21세기에 ‘주인과 노예’는 인류가 고민해봐야 할 대표적 화두다. 세계적 디지털 사상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니콜라스 카는 저서 ‘유리감옥’ 에서 인터넷, 인공지능, 웨어러블 기기, 빅데이터 등을 통해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자동화가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로봇 청소기처럼 일상생활 속 기기는 물론 의료, 항공, 전쟁 등 인류의 삶을 뒤덮은 자동화의 이면을 올바르게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더라도 기계와 기술이 인간의 수고를 엄청 덜어줬지만 인간의 삶이 더 바빠진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대한민국엔 ‘고개 숙인 사람들’이 많다. 짐작한 대로 스마트폰 중독자들이다. 스마트폰이 신문을 대체하고 책을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생각의 깊이’가 갈수록 얕아진다. 창의의 시대다. 창의는 깊은 지식, 다양한 경험, 농익은 사고에서 나온다. 검색보다는 사색이 창의에 더 알찬 씨앗이다. 단순히 마우스로 클릭한 검색수준의 지식으로는 창의가 뻗어나기 어렵다. 주체성이 있어야 주인이다. 인간의 주체성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그게 이성적 동물이다.
IT-인간, 공존의 방정식은?
어쩌면 기술은 인간의 행복에 중립적이다. 기술을 이성적으로 활용하면 인간의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인간다움’이 줄어든다. 의존은 나의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 최고의 도구는 인간의 손’이라고 했다. 손은 두 가지를 함의한다. 신체의 일부인 손은 대단한 도구다. 발명은 머리와 손의 합작품이다. 현대 사회의 대다수 기술도 결국 손에 의해 구현된다. 손은 또한 ‘적당한 수고로움’을 의미한다. 인간은 적당히 ‘땀’을 흘릴 때 가장 인간스럽다. 여기서 인간스럽다는 것은 삶의 가치가 높아지고, 행복지수도 올라간다는 뜻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스크린으로만 고개를 숙이지 말고 고개를 들어 세상을 마주해야 더 넓은 세상이 열린다.
기술은 단순히 생산이나 소비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간을 더 풍부하고 창의적인 삶으로 이끌어주는 가이드가 기술이다. 기술(자동화)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쉽게 얻게 한다. 하지만 때로 ‘내가 누구인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차단한다. 인공지능이 첨단화될수록 인간이 개발한 기계(로봇 등)에 의해 인간의 삶이 질질 끌려갈 수도 있다. 기술을 인간의 일부이자 경험의 수단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인간과 기술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기술은 인류에 더 큰 ‘축복’이 될 수 있다. 인간과 기술 간의 감성 교류가 그 어느 시대보다 중요해졌다.
■ 다가오는 무인차 시대, 사고나면 책임은 누가?
무인 자동차의 상용화는 전문가들마다 시기가 다소 엇갈린다. 하지만 무인 자동차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드물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은 물론 구글 같은 정보기술(IT) 기업들도 무인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컴퓨터 및 센서 기술이 자동화의 상용화 단계를 앞당기고 있다. 무인 자동차는 자동차가 운전이 아닌 여가와 일, 즐거움이 융합되는 또 다른 생활공간으로 변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글은 무인 자동차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는 대표적 기업이다. 구글의 무인 자동차는 실제 도로에서 테스트를 거친 상태다. 구글은 10년 내 자사의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다소 회의적이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자동차가 무인으로 달리는 것에 아직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인 자동차가 도로를 누빌 날이 그리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는 런던에서도 무인 자동차가 일반도로를 달릴 것으로 내다봤다.
무인 자동차는 새로운 운송혁명이다. 하지만 운전자가 필요없는 자동차가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누구의 책임일까. 운전대를 잡아보지도 않은 운전자가 책임을 져야 할까. 아니면 자동운전 프로그램을 만든 프로그래머에게 책임이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동운전 프로그램을 자동차에 부착한 엔지니어일까. 무인 자동차 상용화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시대에 또 다른 생각거리다. 무인 운전 프로그램이 해킹이라도 당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섭게 진화하는 기술이 던져주는 무서운 염려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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