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또 기름값 인하 압력, 시장에 개입 못해 안달
유가가 급락하면서 원가구조가 나쁘거나 자금력이 약한 소형 셰일가스 업체들의 도산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텍사스에 있는 WHP인터내셔널, 엔데버인터내셔널과 호주 업체로 미국에서 셰일가스를 생산해온 레드포크 등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컨설팅업체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미국 셰일가스 업계의 절반은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60~75달러 수준이다. 배럴당 50달러 선이 무너진 상태가 지속되면 줄도산이 이어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미국 셰일산업의 붕괴를 점치는 전문가는 없다. 오히려 한계선상에서 고전 중인 업체들이 퇴출되고 나면 살아남은 기업은 더욱 강해질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가 하락속도가 가파르지만 시장이 커지면서 R&D도 활기를 띠어, 생산단가를 낮추는 기술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기 때문이다. 당장은 생산비가 배럴당 60달러대라 해도 기술 혁신으로 20%만 절감하면 50달러 밑에서 셰일가스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텍사스주 이글포드, 페르미안의 주요 셰일업체 생산단가는 배럴당 40~50달러로 이미 내려갔다. 노스다코타주 베켄의 한 업체는 올해 생산단가를 35%나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유가가 20달러, 10달러대로 떨어져도 경제성을 유지하도록 대비하는 업체들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의 셰일 생산을 중단시킬 만한 유가 하한선은 사실상 없다”고 지적한 것이 실감난다. 물론 셰일업계의 총부채가 최근 4년 새 55%나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다수 업체는 부채규모가 상각전 영업이익(EVITDA)의 5~6배를 넘지 않는다. 증산 치킨게임 속에서도 버틸 여력이 있는 셈이다.
현재 유가 수준에서 이익을 낼 셰일 기업은 오로지 미국에만 있다. 이는 부단한 진입과 퇴출 속에 민간의 창의가 극대화돼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유지해온 시장경제 국가다운 프로세스 그대로다. 정부는 규제 장애물이 없는 판을 벌여주고 민간은 치열한 경쟁 속에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구조다. 부러울 따름이다.
반면 한국 관료들은 어제 또 석유·LPG 유통업계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가격 인하 압력을 넣었다. 1년 새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상 내렸으니 국내 기름값에 그만큼 반영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석유제품 공급가는 국제유가 하락분 이상 이미 내린 상태다. 시중 기름값이 더 안 떨어지는 게 유류세 때문임을 관료들이 몰라서 그랬을 리 없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4년 전 이명박 정부 시절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 한마디에 온통 난리를 피웠던 저급한 관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제발 시장을 내버려 둬라.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